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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라떼 Oct 29. 2022

친구, 되기는 쉽고 끊기는 어렵고

지금 돌아보는 나의 어린일기 #7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사 때문에 전학을 갔다. 이미 5년이나 한 학교를 다녔던터라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갑자기 던져진 기분이었다. 원래 다니던 학교에는 매일 함께 놀고 공부하던 친구들이 있었고, 동네에는 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부터 날 봐온 이웃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 인생 처음으로 가장 큰 환경의 변화를 겪었던 때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마지막 해를 새로운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 나에게는 친구 만들기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물론 외향적인 성격 덕에 금방 친구가 많아지긴 했지만!

2008. 3. 3. 13살 때의 일기

나름 어른이 된 지금의 내게는 '크면 클수록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라는 문장이 왜 이렇게 눈에 밟힐까.


사실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가 어렵다기 보다는, 진정한 '친구'의 의미가 어릴 때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에는 같은 학교 같은 반에 있는 같은 나이의 아이들은 모두 친구라고 불렸다. 특히 더 친한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과는 '짱친', '베프'라며 친구들 중에서 특별한 사람들로 분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초등학생 때 이 베프라고 했던 친구들과도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 그나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싸이월드가, 고등학생 때부터 페이스북이 유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은 인스타그램 친구로 몇명이 남아있긴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인스타 친구'일 뿐. 안부를 묻기조차 어색하지만 누군지는 알아서 서로 팔로우는 하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술먹고 누구든 어울려 놀던 20대 초가 지나자 진짜 친구란 무엇인지를 자꾸 생각하게 됐다. 과연 지금껏 친구라고 불렀던 사람들 중 내가 진심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서로가 잘못했을 때 따끔하게 쓴소리도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내가 정말 애정을 가지고 만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니 그리 많지 않았다. 학교생활도 대외활동도 열심히 했던 덕에 지인은 점점 많아져 발 넓기로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가는 나지만 진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10명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뭘까? 그저 지인에 불과한 것인가.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지방에 있지만 특성상 대학교를 서울로 오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교 3년 내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동고동락하던 친구들과 자연스레 서울에서도 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다들 지방에서 왔다보니 은연중에 느끼는 서울살이의 외로움을 공감하며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자주 뭉치게 되었다. (거의 자취생인 것도 한 몫 했다. 친구들의 자취방이 여러군데 있으니 놀이터가 많았다.) 이 덕에 나는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학교보다 고등학교 동창이 훨씬 많다.


그렇게 영원할 줄만 알았던 고등학교 친구 관계가 위태로워진 적이 있다. 17살 때부터 내내 친했던 친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경험한 것이 다르다보니 생각과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다. 그 차이에서 오는 불만과 스트레스들이 쌓여 이해할 수 없었던 친구의 행동들에 대해 먼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말을 꺼내기까지 정말 수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지만, 내 말을 깊이 생각해 본 친구는 다행히 공감하며 용서를 구했다. 결과적으로 친구를 잃지는 않았으나 이 사건으로 깊이 깨닫게 된 것이 있다. 고등학생 때는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공부를 했다는 큰 공감대 하나만으로 다 잘맞는 친구였을지라도, 각자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 후로는 언제나 우리가 알던 그 때의 서로가 아닐 수 있다는 것. 그 이유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아빠가 말한 '나이 들수록 친구 없어진다. 나중에 진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 3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야.'가 공감되기 시작했다.




정말 웃픈 현실은 이놈의 SNS 때문에 관계를 끊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거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간단한 안부조차 묻기 어색한 사이의 사람도 있고, 같은 학교를 나왔어도 속깊은 얘기까지 할만큼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데 우리 모두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서 '인친' 등으로 묶여있어서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미 나와 맞지 않다는 걸 알고 앞으로 특별히 약속을 잡아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음에도 팔로우 취소를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마음속으로 멀어졌을 뿐 그의 지인 풀에서 내가 빠진 것은 아니니 팔로우 취소를 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쁠까봐? 등등 정말 요상하고 애매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감정 때문에 내 인간관계 다이어트를 진행하기가 힘들다. (근데 그런 사람들이 먼저 DM이 오면 또 뭐라고 답해야 하나, 잘 받아주면 친한 줄 아려나, 그렇다고 틱틱대긴 좀 그런데,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인스타그램은 현명하게 '제한'이나 '숨김', '친한친구 보기' 기능 등을 만들어 두었지만 아무튼 피곤하긴 매한가지다.


이런 이유로 SNS를 끊고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나는 인간관계 때문에 그걸 그만두기에는 공유하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이 많은 걸. 항상 그 사이에서 혼자 줄다리기를 하며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 고민이다. 초연결의 시대라고들 하는데, 그 연결이 가끔은 부담스럽고 외롭다. 연결된 사람은 많아지는데 진짜 친구는 줄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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