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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Oct 19. 2023

베이글 먹으며 울다

양파향에 슬퍼서

집 근처에 베이글 가게가 있다고 해서 벼르고 있었는데 오늘 잠시 여유가 생겨 다녀왔다. 베이글은 잘 몰랐는데 몇 달 전 아주 유명한 베이글을 먹어본 후로 베이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밀가루가 들어가긴 하지만 다른 빵에 비해 재료가 심플하고 좋아하는 샌드위치로도 먹을 수 있으니 자꾸 생각이 났다.




유명한 베이글은 가게 오픈 시간에 맞춰 가도 2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맛볼 수 있었다. 그때 먹었던 베이글은 힘들게 먹어서인지 정말 꿀맛이었다. 담백한 베이글에 여러 가지 재료가 조금씩 들어가 있었는데 정말 다 맛있었다. 다음날 먹었는데도 묵직한 식감이 그대로였다. 또 생각났지만 그곳은 멀고 웨이팅이 길어서 자주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집 근처 베이글 집을 찾아봤다. 요즘 베이글이 워낙 유행해서인지 근처에도 베이글집이 있었다. 베이글 가게는 유럽풍 분위기가 나는 작은 가게였다. 사람들이 거의 다 빠지는 오후 시간대라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베이글도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그나마 눈에 띄는 프레즐베이글과 아몬드베이글을 골라 자리에 앉았다.


프레즐베이글은 소금이 살짝 뿌려져 있어 단짠의 맛이 났고 아몬드베이글은 중간중간 아몬드가 씹혀 고소했다. 열심히 칼로 잘라가며 먹고 있는데 눈물이 났다. 빵이 너무 맛있어서 감격스러운 건가, 요즘 힘든 일 때문에 터진 건가, 스스로도 잘 모르겠는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요즘 감성이 너무 충만한 건가 싶은 그때 어디선가 양파향이 났다. 그렇다. 가게 주방에서 양파를 볶고 있는 것이다. 춥진 않지만 바람이 꽤 불어서 가게의 창문과 문이 모두 닫혀 있었는데 주방의 연기가 가게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사장님은 그제야 문을 열고 환풍기도 세게 돌리시는 듯했지만 양파향이 꽤나 강해서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울고 싶을 땐 눈물도 안 나더니 이렇게 갑자기 눈물이 나기 있는가.


앉은자리는 창가에 있는 바형태의 자리라서 아무도 나를 본 사람은 없었다. 본의 아니게 촉촉한 눈으로 사연 있는 사람처럼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게 됐다. 사장님도 눈이 메우신지 연신 밖을 왔다 갔다 하셨다. 이 상황이 웃겨서 웃음도 났다. 훌쩍거리며 울고 나니 개운해졌다. 남아있는 빵까지 기분 좋게 다 먹고 가게를 나왔다. 그 양파는 어떤 양파일까. 다음에는 양파가 들어가는 베이글을 먹어봐야겠다.


데스크에 있던 곰돌이, 가게랑 너무 잘 어울렸다. 눈이 너무 착하다.


그럴 때가 있다. 그냥 울고 싶은 날. 누군가 봐주기를 원해서가 아닌 그저 나 혼자 슬픈 그런 날. 누가 등 떠밀어서 한 것도 아닌데 혼자 해놓고 짜증이 나는 그런 날 말이다. 그럴 땐 눈 한 번 찔끔하고 털어버리려고 한다. 오늘 생각지도 못하게 힘들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베이글을 몇 개 더 사서 선선한 날씨를 만끽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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