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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Jul 13. 2023

고장난 물건 고쳐쓰기

시계와 형광등 고치기


어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비가 많이 와서 정전인가 했는데 형광등이 나간 것이었다. 내 방 등에는 형광등이 두 개가 들어가는데 한꺼번에 다 나갈 일을 없을 테고 아마 남아있는 형광등이 수명을 다한 것 같았다. 매일 불을 켜고 끄면서 한쪽 등이 나간 것도 몰랐다니. 불이 약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형광등을 바꿔야겠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누군가가 대신 바꿔주었기 때문에 혼자 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늦었고 해서 스탠드 조명에 의지해 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형광등을 찾았다. 다행히 여분 형광등이 있었다. 바퀴가 없는 식탁 의자를 끌고 와서 등 아래에 두고 올라갔다.


첫 번째 관문 등 커버 빼기! 쉽지 않았다. 고정장치가 있는 것 같은데 한 개가 아니었다. 손으로 더듬어 총 3개를 찾았고 고정장치를 풀어 겨우 커버를 뺐다. 커버를 빼니 바로 형광등이 보였다. 형광등은 조금 뻑뻑했지만 교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먼지가 쌓인 커버를 깨끗이 닦아 다시 고정시켰다. 이렇게 간단하다니. 두 번 세 번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 해보기를 잘했다 싶었다.


빼느라 조금 고생한 형광등


내친 김에 며칠 전 고장 난 시계를 집어 들었다. 이상하게 ‘딱딱’ 거리는 소리가 나서 건전지를 뽑아 놓은 터였다. DIY용 시계를 만든다고 사놓았던 부품을 찾아 원래 부품과 비교해 보았다. 크기도 모양도 비슷해서 교체하면 될 것 같았다. 다만 새 부품 위에 고리가 있어 원래 부품 자리에 걸려 들어가지 않았다. 뾰족한 니퍼를 들고 와 잘라냈다. 다음으로 뒷판의 나사를 빼고 앞 유리 부분과 분리해 부품을 바꿔 끼웠다. 건전지를 넣으니 잘 작동된다. 해냈다!


공구를 사용하니 전문가가 된 것 같다


리폼을 해서 다시 쓴 물건은 있었다. 선물로 받은 상자를 고쳐 서랍 칸막이로 쓰거나 주변 분위기에 맞게 시계나 컵받침에 색칠을 하기도 했다. 안 입는 옷의 천을 잘라 파우치를 만들기도 했고 종이를 모아 O링만 연결해 메모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무언가 손을 봐서 고친다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특히 공구를 사용해야 하는 일들이 그랬다. 하지만 형광등은 공구 없이도 간편하게 교체 가능했고 시계도 어렵지 않게 부품을 바꿀 수 있었다. 뿌듯했다.


형광등을 교체하고 불을 켜니 방이 엄청 환해졌다. 시계도 부드럽게 잘 움직인다. 조금만 신경 쓰니 방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는 건 무언가를 사거나 꾸미는 것만이 아니구나. 수명이 다한 물건을 고쳐 쓰는 것도 공간을 보살피는 일인 걸 알게 되었다. 내 주변을 하나씩 조금 더 애써 살피고 다듬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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