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이니율 Nov 30. 2023

빵봉지가 반갑지만

아빠가 사 온 빵

아빠가 빵을 사 오셨다. 내가 가는 단골 빵집에서 빵을 한 봉지 사 오셨다. 저녁을 먹으려다 빵봉지를 보고 반을 덜어내고 대신 빵으로 배를 채웠다.




빵을 사 오시면 반갑긴 하지만 사실 불안하기도 하다. 어떤 빵을 사 오셨는지 걱정이 되어서다. 이 빵집은 비건빵집이고 밀가루대신 쌀가루를 사용하는 곳이다. 물론 쌀가루도 탄수화물이라 마냥 좋진 않지만 밀가루보다 속이 덜 더부룩해서 선호한다.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고 쌀가루를 사용하니 일반 빵보다는 낫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빵만 있는 건 아니다. 여러 기호를 맞추기 위해 설탕이 들어간 달달한 빵들도 판매하고 있다. 내가 주로 찾는 빵들은 색도 모양도 단순하고 못생겼는데 달달한 빵들은 색부터 벌써 먹음직스럽다. 심지어 소금빵은 광이 날 정도로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나와 달리 아빠는 달달하고 화려한 시나몬롤, 모카번, 단팥빵을 좋아하신다. 당뇨가 있으셔서 단 음식을 조심하셔야 하는데 달달한 빵을 찾으시니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빵을 사 오실 때도 달달한 빵을 사오시진 않으셨는지 살피는 것이다. 아빠는 본인이 사 오셨으면서도 내 눈치를 보신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맞게 사 왔느냐며 꼭 물어보신다.


아빠가 이 빵집을 알게 되신 건 나 때문이다. 작년부터 내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식단을 바꿨는데 기피대상이 밀가루와 설탕이었다. 그러다 보니 밀가루와 설탕이 들어간 빵은 당연히 못 먹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비건빵집이 생기면서 그나마 덜 나쁜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아빠에게 이야기했더니 가끔 이렇게 그 빵집에서 빵을 사 오신다. 마침 그 빵집은 아빠가 일하시는 곳 근처에 있으니 퇴근하시면서 사오기도 좋으실 것이다.


이제는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빵들을 잘 골라오신다.


유난히 힘들고 마음이 헛헛할 때 괜히 이것저것 사서 집에 들어올 때가 있다. 아빠도 그런 마음이 아니셨을까 싶다. 내가 어렸을 때도 늦게 집에 들어오시는 날엔 동생과 나 먹으라고 과자를 사 오시곤 하셨다. 지금은 다 큰 성인인데도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빵을 사가지고 들어오신다. 내가 이것저것 안 먹는다고 하는데 이 빵집 빵은 가끔 먹는 걸 보고 기쁜 마음으로 사 오셨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단 것이 들었다고 퉅툴거렸으니. 맛있게 잘 먹어놓고 마음에 걸린다. 달달한 빵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내일은 아빠가 보는 앞에서 맛있다고 티를 내며 먹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