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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Dec 08. 2023

일상 보살피기

생활용품 채워 넣기

급한 업무 일정 때문에 그동안 일상을 돌볼 새가 없었다. 루틴은 잊은 지 오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끼니도 급하게 대충 때웠다. 하지 못한 빨래는 쌓여 있었고 방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서야 방을 둘러보았다. 급하게 꺼내 입은 옷들이 제자리를 못 찾고 옷장 문고리에, 베란다에 걸려있었다. 세탁해야 하는 옷들은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버리려고 모아둔 옷까지 합쳐져서 잘못 손을 대면 무너질 듯 아슬아슬 버티고 있었다. 방바닥은 푸석했고 책상 위에도 우편물과 각종 종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욕실엔 비누가 잡지도 못할 만큼 작아져 있었지만 바꿀 생각도 안하고 그대로 쓰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청소와 정리를 시작했다. 빨래는 우선 욕실로 옮겨놓고 아무 때나 걸려있던 옷들을 행거에 걸었다. 바닥을 청소하고 책상 위에 있는 우편물과 종이도 정리해 필요 없는 건 모아서 버렸다. 창고에서 새 비누를 꺼내서 욕실에 두고 밑바닥을 드러낸 면봉통도 채워 넣었다. 다 하고 나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이 간단한 일을 왜 이렇게 미뤄뒀는지 모르겠다. 아마 몸이 지쳐 마음에도 여유가 없었던 탓일 것이다.


언젠가 SNS에서 생활용품을 채워 넣는 리필영상을 본 적이 있다. 냉장고 속에 보관할 제품이나 세제들을 통에 채워 넣는 영상이었는데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냥 보고 있는 나도 기분이 좋은데 정리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정리를 하면서 물건도 한번 더 챙기고 그 물건들이 있는 공간까지 살피면서 일상을 잘 살아내려는 모습이 인상 깊어 몇 번이나 돌려봤다.


손세탁용 비누인데 이렇게 작아질 때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 공간은 영상 속 공간과 달리 소박하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정돈된 모습을 보니 나름 괜찮아 보였다. 예쁘게 꾸민 공간도 좋지만 잘 보살핀 공간도 마음 쓰기에 따라 좋아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손길을 더 준만큼 공간도 내게 에너지를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수시로 살펴보고 빠진 것이 있다면 채워 넣고 떨어지고 부서진 곳이 있다면 보수를 해서 가꿔야겠다. 큰 변화는 없겠지만 미세하게 달라진 공간 속에서 나만 아는 뿌듯함이 있지 않을까. 몸은 아직 피곤하지만 청소와 정돈만으로도 회복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직 빨래가 남았다. 내일은 꼭 빨래까지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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