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은 팥죽
동지맞이 팥죽 먹기
동지가 지나고 팥죽을 먹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팥죽이다. 예전에는 팥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먹어보니 꽤 맛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라 한 숟가락만 맛본다는 게 한 그릇을 먹어버렸다.
며칠 전 엄마가 곧 동지인데 팥죽을 먹겠냐고 물어보셔서 안 좋아하니 안 먹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엄마는 팥죽을 만들지 않으셨다. 원래 엄마는 동지 때마다 직접 만드시거나 이웃분께 나눔 받은 팥죽을 꼭 드셨다. 어렸을 때부터 지내온 엄마의 동지는 지금보다 더 큰 의미였을 것이다. 작은설이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하니 겨울의 큰 행사였을 것이다. 그러니 가족들이 다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엄마는 팥죽을 꼭 챙겨드셨다. 내가 안먹는다고해서 올해는 그냥 넘어가나 했는데 동지가 지나고 엄마는 결국 팥죽을 만드셨다. 그리고 팥죽이 맛있게 됐다고 먹어보라고 권하셨다.
팥죽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사실 엄마와 다퉈서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잠깐 나갈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들어왔는데 그때 다시 엄마가 팥죽을 먹어보라고 권하셨다. 나갈 때만 해도 못된 마음에 엄마가 한 팥죽을 절대 안 먹겠다고 다짐했는데 다시 들어오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엄마에게 적을 두나 싶어서 마음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팥죽을 떠서 맛을 보았다.
엄마는 팥죽을 만들기 위해 아침부터 팥과 쌀을 불러두셨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팥을 압력밥솥에 넣고 익히고 찹쌀로 죽을 따로 쒀서 섞는 방법으로 팥죽을 만드셨다고 하셨다. 간은 설탕에 예민한 나를 위해 소금과 약간의 꿀로만 했다고 하셨다. 쌀알이 보이는 팥죽을 보니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고생하시며 만든 죽을 외면할 수 없어 먹어보자 싶었다.
입맛이 달라진 걸까, 몇 달 전에는 콩물이 맛있어지더니 이제는 팥죽까지 맛있어졌다. 쌀알도 먹기에 거슬리지 않고 걸쭉하고 묵직해서 좋았다. 이제 콩물처럼 팥죽도 최애음식이 될듯하다. 한 그릇 다 먹고도 어색해서 맛있다는 말을 엄마에게 하지 못했다. 내일은 남은 팥죽을 먹고 꼭 맛있다고 말씀드려야겠다.
집에서 만든 팥죽이니 왠지 몸에도 더 좋을 것 같고 팥죽은 액땜을 해준다고 하니 앞으로 기운도 더 좋아질 것 같다. 한 해 마지막 절기인 동지가 지났다. 정말 올해가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길었던 밤도 이제 점점 짧아지겠지. 소한, 대한을 지나 입춘이 오길 기다리며 남은 겨울도 잘 보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