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제삿밥과 즐거운 시간 보내기
어제 외갓집 제사가 있었다. 삼촌네에서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외갓집으로 갔다. 도와드리려고 일찍 가려고 했는데 한사코 거절하셔서 제사 지내는 시간에 맞춰 갔는데 더 도와드릴 게 없을 정도로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현관문과 대문도 열고 초에 불도 붙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정말 살아계신 것처럼 예전 이야기도 하고 잘 지내시는지 안부도 여쭤봤다. 보이진 않지만 왠지 상 너머에서 웃으시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이 잘 없지만 할머니는 내가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참 예뻐해 주셔서 기억이 난다. 무뚝뚝하고 싹싹하지도 않은 손녀가 뭐가 그리 예쁘셨는지 나를 볼 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으시면서 좋아해 주셨다. 그런 할머니께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어 지금도 너무 아쉽고 죄송하다.
제사를 다 지내고 음식을 나눠먹기 위해 상을 정리했다. 제삿밥을 먹으려고 저녁을 굶고 있었는데 밥을 먹는다고 하니 갑자기 더 배가 고파왔다. 상 위에 각종 나물과 튀김, 탕국, 밑반찬들이 올라왔다. 주메뉴는 역시 양푼이에 비벼 먹는 비빔밥이다. 쌀밥에 나물을 잔뜩 넣고 참기름 몇 바퀴를 두른 후 고추장을 듬뿍 넣어 비빈다. 이렇게 만든 비빔밥 한 숟가락에 튀김 한 개를 반찬 삼아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제사음식은 기름져서 물린다고도 하는데 나는 평소에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서 그런지 참 좋아한다.
삼촌과 숙모님이 만드신 제삿밥은 꼭 할머니의 제삿밥과 닮았다. 튀김은 얇게 잘라 튀기고 나물도 얇게 채 썰어 묽게 볶아 만드신다. 특히 탕국은 할머니 방식 그대로 두부를 잘라 구워서 넣고 홍합을 꼭 넣어 끓이신다. 그래서 국물 맛이 아주 시원하다. 고추장까지 할머니식 고추장이다. 할머니는 간을 하실 때 간장을 넣으시기 때문에 고추장 색이 까만데 오늘 먹은 고추장도 그랬다. 이렇게 할머니 스타일의 음식을 먹으니 할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났다. '아이고, 왔나~' 라며 반겨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제삿밥을 맛있게 먹으며 모처럼 늦게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제사를 없애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삼촌과 숙모님도 이제 힘에 많이 부쳐서 생각을 안 해보신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실 거라고 하셨다. 그래야 이렇게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어렸을 때는 가족 행사도 많고 명절마다 북적거렸는데 이제는 각자 생활도 바쁘고 결혼이나 여러 상황으로 보기 힘들어졌다. 삼촌, 숙모님의 말씀대로 제사를 핑계로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이제 외갓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안 계시지만 삼촌, 숙모 덕분에 늘 계시는 것 같다. 할머니의 정을 삼촌과 숙모에게서 느낀다. 언젠가 제사는 없어지겠지만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오늘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돌아가는 양손 무겁게 이것저것 음식들을 싸주셨다. 내일도 맛있는 제삿밥을 먹을 수 있다니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