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이니율 Dec 31. 2023

제사의 의미

맛있는 제삿밥과 즐거운 시간 보내기

어제 외갓집 제사가 있었다. 삼촌네에서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외갓집으로 갔다. 도와드리려고 일찍 가려고 했는데 한사코 거절하셔서 제사 지내는 시간에 맞춰 갔는데 더 도와드릴 게 없을 정도로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현관문과 대문도 열고 초에 불도 붙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정말 살아계신 것처럼 예전 이야기도 하고 잘 지내시는지 안부도 여쭤봤다. 보이진 않지만 왠지 상 너머에서 웃으시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이 잘 없지만 할머니는 내가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참 예뻐해 주셔서 기억이 난다. 무뚝뚝하고 싹싹하지도 않은 손녀가 뭐가 그리 예쁘셨는지 나를 볼 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으시면서 좋아해 주셨다. 그런 할머니께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어 지금도 너무 아쉽고 죄송하다.


제사를 다 지내고 음식을 나눠먹기 위해 상을 정리했다. 제삿밥을 먹으려고 저녁을 굶고 있었는데 밥을 먹는다고 하니 갑자기 더 배가 고파왔다. 상 위에 각종 나물과 튀김, 탕국, 밑반찬들이 올라왔다. 주메뉴는 역시 양푼이에 비벼 먹는 비빔밥이다. 쌀밥에 나물을 잔뜩 넣고 참기름 몇 바퀴를 두른 후 고추장을 듬뿍 넣어 비빈다. 이렇게 만든 비빔밥 한 숟가락에 튀김 한 개를 반찬 삼아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제사음식은 기름져서 물린다고도 하는데 나는 평소에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서 그런지 참 좋아한다.


삼촌과 숙모님이 만드신 제삿밥은 꼭 할머니의 제삿밥과 닮았다. 튀김은 얇게 잘라 튀기고 나물도 얇게 채 썰어 묽게 볶아 만드신다. 특히 탕국은 할머니 방식 그대로 두부를 잘라 구워서 넣고 홍합을 꼭 넣어 끓이신다. 그래서 국물 맛이 아주 시원하다. 고추장까지 할머니식 고추장이다. 할머니는 간을 하실 때 간장을 넣으시기 때문에 고추장 색이 까만데 오늘 먹은 고추장도 그랬다. 이렇게 할머니 스타일의 음식을 먹으니 할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났다. '아이고, 왔나~' 라며 반겨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제삿밥을 맛있게 먹으며 모처럼 늦게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제사를 없애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삼촌과 숙모님도 이제 힘에 많이 부쳐서 생각을 안 해보신 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실 거라고 하셨다. 그래야 이렇게 얼굴도 보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어렸을 때는 가족 행사도 많고 명절마다 북적거렸는데 이제는 각자 생활도 바쁘고 결혼이나 여러 상황으로 보기 힘들어졌다. 삼촌, 숙모님의 말씀대로 제사를 핑계로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싸주신 각종 나물들, 정갈하게 담은 모습에 더 먹음직스럽다.


이제 외갓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안 계시지만 삼촌, 숙모 덕분에 늘 계시는 것 같다. 할머니의 정을 삼촌과 숙모에게서 느낀다. 언젠가 제사는 없어지겠지만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오늘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돌아가는 양손 무겁게 이것저것 음식들을 싸주셨다. 내일도 맛있는 제삿밥을 먹을 수 있다니 기쁘다.

작가의 이전글 오이 샌드위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