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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Feb 25. 2024

불러도 대답 없는 너

조카가 삐졌다

조카는 감사하게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 사이에 애교도 늘고 말귀도 더 알아들어서 너무나 예쁘다. 자기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고 동작을 시키면 따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고집이 생겼다.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면 짜증을 낸다. 온몸으로 동동거리며 표현을 한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하지만 그런 조카를 보면 서운해진다.




요즘 조카를 보는 재미가 더 생겼다. 무언가 하라고 시키면 곧 잘하기 때문이다. 노래가 나오는 책이 있는데 각 버튼마다 이야기의 주제곡이 나온다. 어떤 주제곡을 부르고 그 노래의 버튼을 눌러보라고 하면 딱 찾아서 누른다. 반복 학습으로 익힌 거라는 걸 알면서도 천재가 나왔다고 감탄을 했다. 윙크를 해보라고 하면 두어 번 고민하다가 윙크를 해준다. 비록 두 눈을 감고 하는 어색한 윙크지만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에 너무 기뻤다. 자꾸만 조카를 부르고 싶고 장난감을 가져가서 이것저것 해보라고 시키고 싶다. 하지만 기분이 안 좋아지면 바로 돌변한다.


잠이 오거나 배가 고프거나 무언가가 마음에 안 들면 기분이 안 좋은 티를 낸다. 그때는 아무리 애를 쓰고 달래도 듣질 않는다. 몇 번이나 불러도 눈길도 주지 않는다. 하도 답답해서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어도 꼼짝도 안 한다. 이 정도면 정말 단단하게 삐진 것이다.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집안의 물건들을 다 손을 대는데 위험하다고 못 가게 하고 리모컨과 스마트폰을 좋아해도 고장 날까봐 주지 않는다. 그러면 획 돌아서 가버린다.


장난감 리모컨은 가짜라는 걸 알고 금세 지루해한다.


자기주장이 생기는 건 성장 발달에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섭섭한 걸 어쩌나. 점점 행동반경이 넓어지니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더 많아질 것이다. 어제도 영상통화를 했는데 폰을 안 줬다고 삐져서 화면을 보지도 않았다. 결국 마지막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래도 다시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어주고 애교를 보여준다. 삐져도 곧 다시 환한 조카로 돌아오니 서운한 마음은 금세 잊어버리고 웃게 된다.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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