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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Aug 03. 2023

먹기 전까진 괜찮았는데

치킨랩 실패한 후기


밀가루와 설탕 없이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건 참 어렵다는 걸 요즘 많이 느끼고 있다. 삶고 찌면 맛이 꽤 심심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지만 맛이 아쉬울 때가 많다. 얇은 토르티야에 바삭하게 튀긴 치킨을 넣고 소스를 잔뜩 뿌린 치킨랩을 좋아했다. 그때 먹었던 맛이 그리워 건강하게 만들어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




무설탕현미빵, 시럽 없는 토마토주스, 향에 비해 맛이 안나는 허브차들도 잘 먹고 있으니 맛이 조금 심심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름대로 계획도 세웠다. 겉에 싸는 피부터 건강한 재료를 고르고 색에 맞춰 채소도 3종류를 준비했다.


귀리 가루를 샀다. 귀리 가루는 밀가루와 달리 점성이 아예 없어서 얇게 만들기 힘들다고 하니 전분을 조금 섞었다. 하지만 부칠 때부터 찢어지기 시작했다. 반죽으로 덧붙여가며 겨우 수습해 완성했다. 복날에 먹고 남은 삶은 닭이 있어 살도 발랐다. 랩을 먼저 깔고 한 김 식힌 귀리피에 마요네즈를 얇게 바른 후 파프리카, 양파, 상추, 닭을 차곡차곡 올렸다. 그리고 끝에서부터 천천히 말았다.


여기저기 우두둑 찢어졌지만 랩으로 당겨가며 끝까지 말았다. 랩의 접착력으로 모양은 갖춰졌다. 반으로 잘라 단면을 보니 그럴싸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대를 가득 안고 한 입 맛보았다. 맛이 없었다. 텁텁했다. 한 입 물자마자 모양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더 흐르기 전에 허겁지겁 먹었지만 다시 먹고 싶지 않았다. 소스로 마요네즈를 선택한 것도 실수였다. 고소하기는커녕 느끼했다.


두꺼운 귀리피로 싼 치킨랩, 맛도 없고 마음도 아프다.


그 이후로 간을 더 맞춰보면 괜찮을까 싶어 홀그레인 머스터드, 간장을 넣어보기도 했지만 맛을 비슷했다. 두꺼운 피가 문제였다. 아예 피 대신 양배추를 겹겹이 싸서 먹어도 보았지만 맛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시판 소스와 짭조름한 튀김을 이길 수 없었다.


밀가루와 설탕을 빼고 맛있게 먹는다는 건 애초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심심한 맛에 꽤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길들여진 입맛을 뚫기란 쉽지 않았다. 가끔 밀가루, 설탕 먹으면 어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애써온 노력들이 아쉬워 마음이 이내 불편해진다. 치킨랩은 일단 두고 귀리가루는 피부에 양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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