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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담긴 김치찌개

엄마의 맞춤 김치찌개

by 샤이니율

엄마가 김치찌개를 끓여주셨다. 푹 익은 김치를 꺼내 듬성듬성 썬 다음 국물을 붓고 양파, 파, 두부를 넣어 푹 끓인 것이다. 김치만 있으면 간단하게 완성되는 요리다.




하지만 김치찌개는 절대 간단하지 않다. 긴 여정이 담긴 음식이다. 간이 잘 베인 배추에 각종 재료로 맛을 낸 양념을 발라 김장을 해야 한다. 엄마와 나는 지난해 12월 중순쯤 김장을 했다. 절인 배추를 사용하긴 했지만 양념장은 엄마가 다 만드셨다. 액젓도 좋은 것을 고르고 곱고 빛깔 좋은 고춧가루에 설탕 대신 원당을 넣으셨다. 양념장은 하루 불려뒀다가 다음날 갓과 잔파, 무를 넣어 버무렸다. 많은 양은 아니라서 점심때쯤 김치 담기가 끝이 났지만 허리와 다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그렇게 만든 김치가 이렇게 익어서 김치찌개 재료가 되었다.


엄마는 시간이 더해져 맛이 좋아진 김치를 한 움큼 꺼냈다. 듬성듬성 썰고 멸치로 낸 육수를 부었다. 불에 올려 끓으면 양파, 대파를 듬뿍 넣어 푹 끓여준다. 나라면 재료를 계산하면서 조금씩 넣었을 텐데 엄마는 대충이 없다. 양파도 대파도 한 움큼이다. 그래서 맛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보통 김치찌개에는 고기나 참치캔이 들어가는데 고기를 잘 먹지 않는 나를 위해 멸치 한 줌을 넣고 국물을 진하게 냈다. 내가 두부를 좋아한다고 두부도 큼직막하게 썰어 올려주셨다. 진짜 나만의 맞춤 김치찌개다. 고기나 참치캔을 넣은 김치찌개보다 감칠맛은 덜하지만 멸치가 제대로 우러나서 충분히 맛이 좋다.


갓 했을 때도 맛있지만 김치찌개는 역시 며칠 우려 뒀다가 먹는 것이 진국이다. 조금씩 아껴가며 먹고 있다. 맛있냐는 엄마의 물음에 괜히 김치 크기가 너무 크다고 딴말을 하긴 했지만 먹을 때마다 세네 국자를 떠서 먹을 만큼 맛있게 잘 먹고 있다. 엄마의 다른 요리는 조금씩 흉내를 내보고 있는데 김치찌개만큼은 절대 따라 하지 못할 것 같다. 김장을 할 때부터 이어져온 그 손맛을 따라갈 자신도 없고 한다해도 비슷하게 될 리도 없을 것이다.


브런치_엄마의김치찌개-1.jpg 푹 끓인 거라 멸치도 그냥 부드럽게 씹힌다. 두부까지 넣었으니 단백질도 풍부하다.


김치찌개는 간단하지만 오랜 시간이 더해져 만들어진 음식이다. 거기다 건강하고 맛있게 먹으라고 정성 들여 만들어주신 음식이다. 남기지 말고, 김치가 크다고 투정 부리지 말고 싹싹 긁어 밥 듬뿍 떠서 다 먹어야겠다. 엄마의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먹을 때마다 꾹꾹 눌러 먹으면서 오래오래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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