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 강회 만들기
정말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점심때는 만들어둔 김밥거리가 있어 어찌어찌 싸 먹었는데 저녁에는 뭘 먹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배는 고픈데 아무리 고민해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이 정도면 요리하기 싫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뭐라도 만들어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쪽파를 데쳤다.
있는 반찬에 대충 먹으려고 했는데 쪽파가 생각났다. 시장에서 산 쪽파인데 생각보다 많이 남아서 요리를 해야겠다고 찜을 해둔 터였다. 찾아보니 쪽파는 겉절이로 많이 만들었다. 쪽파의 감칠맛 때문에 겉절이로 만들면 잘 어울리지만 파로 김치나 무침을 만든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기준에서 생파로 무치는 요리는 파향이 너무 강해서 겉도는 느낌이 든다. 파의 알싸한 맛도 걸려서 잘 먹지 않는다.
그러다 '쪽파 강회'라는 음식을 알게 되었다. 쪽파를 데쳐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음식인데 오징어 숙회, 문어숙회처럼 쪽파를 숙회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끓는 물에 데치기만 하면 되니 만들기 쉽고 무엇보다 파를 익히기 때문에 강한 맛과 향이 나지 않아 먹기 괜찮을 것 같았다. 얼른 쪽파 몇 줄기를 꺼내 씻었다.
쪽파가 싱싱하지 않아서인지 벌써 시든 잎이 보였다. 시든 부분은 벗겨내고 싱싱한 부분만 가지런히 모았다. 냄비에 물을 넣고 불을 켜고 기다리다가 끓기 시작하자 쪽파의 몸통 부분부터 넣고 10초 정도 익혔다. 몸통 부분이 굵기 때문에 먼저 익히는 것이다. 10초가 지나면 나머지도 넣고 20초 정도 짧게 익힌 후, 찬물에 빨리 헹궜다.
쪽파 강회의 포인트는 모양이다. 길쭉하고 얇은 쪽파를 두어 번 접은 후, 남은 줄기로 가운데를 단단하게 마는데 이게 은근 재미가 있다. 데쳐서 부드러워진 쪽파는 손질하기 쉽고 물기가 있어서 따로 매듭을 짓거나 이쑤시개 같은 도구로 마무리하지 않아도 쉽게 고정할 수 있다. 어렵지 않게 꽤나 그럴듯한 모양이 만들어지는데 꼭 내가 전문 요리사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같이 곁들일 초고추장은 예전에 만들어둔 것을 꺼냈다. 초고추장이 없다면 고추장, 원당, 식초, 다진 마늘을 넣고 간단히 만들면 된다. 넓게 펼쳐서 플레이팅을 하려고 안 쓰던 길쭉한 접시도 꺼냈다. 데쳐서 새파래진 쪽파와 빨간 초고추장의 색이 대비돼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젓가락은 사치다. 얼른 손으로 집어 먹었다. 파의 달큼함이 좋은데 초고추장이 새콤해서 입맛을 돋워주었다. 채소라서 맛이 없을까 살짝 걱정이 됐는데 왠 걸, 하나씩 집어 야무지게 초고추장에 찍어 맛있게 먹었다.
쪽파는 무침을 할 때 다져 넣거나 전을 하는 용도로만 생각했는데 '강회'라는 요리를 만나서 기분이 좋다. 다음에는 파프리카, 오징어를 곁들여 한 접시 요리로 근사하게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