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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Aug 20. 2023

다시 반려식물

나를 거쳐 간 식물들


무더운 날씨 때문에 나른했던 오전, 축 늘어져 있던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행운목과 아이비다. 가까이서 보니 수분이 부족해서인지 잎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물을 갈아주고 이미 말라버린 잎을 떼 정리해 주었다. 이 식물들도 잃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식물을 잘 기르지 못한다. 내게 오면 파릇파릇했던 식물도 며칠 못 가 누렇게 떠서 시들해진다. 물이 부족한가, 햇빛이 필요한가, 이리저리 애써보지만 그대로 보내고 만다. 그러다 보니 내 욕심으로 애꿎은 식물만 괴롭힐까 싶어 아예 기르지 않게 되었다. 안타깝게 보낸 3가지 식물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첫 번째 식물은 봉숭아꽃이었다. 초등학생 때 실습으로 봉숭아 씨앗을 심었는데 그것이 첫 시작이었다. 자라는 모습을 보고 관찰일기를 썼는데 선생님의 도움 때문인지 금세 쑥쑥 자라 키우는 재미가 있었다. 꽃도 폈다. 엄마는 약국에서 명반을 사서 손톱에 꽃물을 들여주셨다. 방학 때는 집에 데리고 왔는데 여름 강한 빛에 풀이 죽어있다가도 내가 물을 주면 쌩쌩해지는 것이 기특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잘 버텨주던 봉숭아는 이사를 하게 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두 번째 식물을 만났다. 길을 지나가다 동네 꽃집에서 꼿꼿하게 잎을 피운 식물을 보고 반해서 그 길로 사들고 왔다. 율마라는 식물이었는데 곧고 풍성하게 자란 모습이 꼭 작은 나무 같아 예뻤다. 그러나 주말, 방학 등 여러 이벤트로 집을 점점 비우게 되면서 생기를 더해주던 푸른 잎은 점점 갈색으로 말라버렸다. 그렇게 두 번째 식물을 보냈다. 처음 샀을 때만큼 애정을 주지 못했던 것 같아 속상했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내게 식물은 없었는데 몇 년 전, 아는 분이 파는 선인장을 사게 되면서 세번째 식물을 접하게 되었다. 알바 선인장이었다. 이번에는 잘 키워야지 하고 햇빛도 자주 보여주고 물 체크도 하며 신경을 썼다. 크기가 너무 작아서 제대로 클 수 있을까 싶었지만 내 마음을 아는지 제 몸집보다 더 작은 둥근 몽우리를 2개 더 키워냈다.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화분이 너무 좁은 것 같아 분갈이도 해주었다. 그런데 분갈이 이후 시름시름 앓더니 어느새 화분만 남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분갈이는 식물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라고 한다. 거기다 분갈이 후 햇빛을 더 많이 보라고 평소 두었던 방이 아닌 베란다에 뒀는데 갑자기 변한 환경에 많이 아팠던 모양이다.


식물 이야기를 하면 슬픈 기억만 떠오른다. 내게 온 식물들에게 미안하다. 끝까지 책임져주지 못했으니 말이다. 다시는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했는데 행운목과 아이비는 어쩌다 또 눈에 들어왔을까. 여름은 식물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계절일 것이다. 직사광선은 피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길목에 두고 잘 살펴봐야겠다. 행운목의 꽃말이 '약속을 실행하다'라고 한다. 잘 키우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꽃도 피는 식물이라고 하는데 거기까지 기대하진 않는다. 건강하기만 바랄 뿐이다. 식물들아,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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