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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Oct 02. 2023

나물이 맛있어지는 나이

명절 나물을 보면서 든 생각

어렸을 때 나물을 싫어했다. 단맛도 없고 새콤하지도 않은 데다가 채소들을 볶지도 않고 데치고 삶았으니 어린 마음에 나물은 맛없는 음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은 맛있다고 먹는데 정말 맛있어서 먹는지, 몸에 좋아서 참고 먹는 건지, 나도 어른이 되면 먹게 되는 건지 궁금했다. 이제 나는 나물을 챙겨 먹는다.


 



나물은 특히 명절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다른 음식이 어쩌다 생략되고 바뀌어도 나물은 절대 빠지지 않았다. 음식을 만들어서 모아두면 튀김이나 전은 집어 먹었지만 나물은 손도 대지 않았다. 맛도 궁금하지 않았다. 집에 갈 때 먹고 남은 음식을 싸주셨는데 튀김과 전은 양이 작고 나물과 탕국만 많아 불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물을 잘 먹는다. 큰 통에 담아주시는 게 반갑다. 반찬으로 그냥 집어 먹기도 하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빔밥으로 먹기도 한다. 요즘은 나물을 활용해 나물전이나 나물만두 등 다른 요리로 바꿔 알뜰하게 잘 먹고 있다.


나물은 집집마다 종류가 다르다고 한다. 우리 집은 콩나물, 무나물,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을 주로 했다. 여유가 되면 가지, 도라지, 숙주나물도 추가했다. 나물은 큰 냄비에 재료와 참기름을 넣고 볶다가 소금으로 간을 해서 만든다. 시금치나물은 살짝 데친 후에 간을 한다. 완성된 나물은 한 김 식힌 후 깨소금을 뿌리고 그릇에 담으면 완성이다. 어렸을 때 음식 만드는 걸 구경하는 나에게 큰어머님은 나물을 담는 법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색이 겹치지 않게 콩나물, 시금치나물, 무나물, 고사리나물 순으로 담아야 보기도 좋고 먹기 좋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나물 중에서도 무나물을 좋아한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식감이 좋다. 뭇국은 잘 먹지 않는데 이상하게 무나물은 입에 맞다. 씹을수록 달큼한 시금치나물도 좋다. 이번 명절에는 시금치가 비싸 단배추나물이 대신 나와서 조금 아쉬웠다. 외갓집에 가면 나물은 늘 비빔밥으로 먹었다. 국물이 자작한 나물을 양푼이에 골고루 담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주걱으로 비벼 먹었다. 지금은 차례를 지내지 않아 나물이 없으니 비빔밥을 만들지 않는다. 양푼이에 여럿이 함께 비벼먹던 외갓집 비빔밥이 가끔 그립다.


올해 나물은 다양하다. 벌써 반통을 먹었다.


명절이 지나도 나물은 며칠 동안 계속 식탁에 올라올 예정이다. 탕국에 전까지 놓으면 금세 한 상이 완성되니 편하다. 어렸을 때는 명절음식들이 느끼해서 싫더니 이제는 별미가 되었다. 먹다 보니 고소하고 아삭한 나물의 맛을 알 것 같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을 즐기는 나는 정말 어른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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