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스탠스가 변했다
굴보쌈 너머로 종교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집에 돌아오며 나는 우리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했다.
그래, 싫든 좋든 롤러코스터에 탄 것이다. 그 롤러코스터는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회사에서 좀 더 유대감을 가졌던 동료. 조금 더 잦은 커피타임, 조금 더 잦은 저녁식사를 하던 사이. 거기에서 나아가 우리는 서로의 세계관을 들여다본 사이가 되었다. 다음은 뭐지? 나에게 물었다. 에이 몰라. 이 사람은 그래도 되는 사람일까? 모르지. 그는 좋은 사람이기도 했지만 아직은 낯선 사람이기도 했다. 내 세계 밖에 있던 아주 낯선 사람.
굴보쌈을 먹은 다음 주에는 내 생일이 있었다.
그 주에 나는 매일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내 생일은 12월이다. 내가 사랑하는 추운 날씨의 계절.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생일인 덕분에 그때가 되면 친구들과 그 해를 회고하고 애정을 주고받는 연말 모임을 가지곤 했다. 생일 전 날도 한 친구와 성수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S, 오늘 친구와 만난다고 했죠? 혹시 괜찮다면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볼 수 있어요?‘
저녁 9시. T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잉 무슨 일이지. 두근두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막 좋진 않은데 싫지도 않은. 봐도 상관없는데 뭔가 투머치가 되면 부담스러울 것 같은.
‘T 집 가는 방향이랑 겹치죠? 그럼 잠깐 보면 되겠네요!‘
그러자고, 내가 사당역에 내리면 그가 나를 차로 픽업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어라. 그의 차를 타는 건 처음이다. 뭔가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동생 같은 느낌의 그가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여전히 엄청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디쯤의 어색한 기분이었다. 그는 야근이 길어진 다음날에는 차를 타고 출근한다고 했다. 뭔가 초보 운전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무척 부드러운 운전 실력에 놀라기도 했다. (나에게 그가 어떤 이미지였는지 짐작이 가는가?) 우리 집 근처 편의점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차를 세우고 나에게 씩씩하게 말했다.
‘사실 내일이 S 생일이라서 제가 가장 먼저 축하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는 뒷좌석에서 네모난 선물 상자 하나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오늘 오후 반차를 쓰고 내 생일 선물을 사러 다녀왔다고 했다.
아! 오늘 회사 라운지에서 회의를 하고 있을 때 가방을 메고 회사를 나서던 그의 뒷모습을 본 게 기억이 났다. 웬일로 일찍 퇴근하지? 싶었는데 그게 이것 때문이었다니.
의외의 모습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열어본 상자에는 하얗고 보드라운 캐시미어 목도리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에서 받기에 너무 부담스럽지도 않고, 또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고르는데 공을 들인 것 같은 선물이었다. 이어서 그의 편지도 그랬다. 담백한 말투로 생일을 축하하고 싶었다고, 특별한 나와 더 친해지고 싶다는 그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아니 어쩜. 이렇게 부담스럽지도 않으면서 내 마음에 딱 드는 선물과 축하를 할 수 있지? 연애 별로 별로 안 해봤다고 했는데..?
그는 좋은 동료에서 이성으로 스탠스를 바꾼 게 분명했다. 급하지 않지만 담담하고 분명하게. 그의 태세전환은 놀랍게도 나의 마음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색했던 나의 마음이 순도 높은 기쁨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 서프라이즈를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마음이 중심에서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마음으로 인해 즐거워졌던 적이 언제였더라?
내 마음에 꽉 걸어뒀던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게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