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와 아이들이 사는 집을 분리한지 10년째 이다.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므로,
아이들과 분리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 집은 3대가 각각 분리되었다.
아이들은 조부모님과 나의 잔소리로부터 해방되어
참으로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챙겨야 할
집안일들이 줄어들어 내 일에 집중할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다.
하지만 끊을 수 없는 것은, 딸들이 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었다. 25년 간
가족들의 세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이 놈의 밥,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입버릇 처럼 생각했었다. 그래도 늘
자식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 나의 일이었고,
오래된 습관이었다.
밑반찬을 비롯한 음식을 반찬통에 담아 날랐다.
딸들이 사는 곳이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지만
여러가지를 싸가지고 가다보면 그 무게가
힘겨웠다. 하지만 힘들다는 티는 내지 않았다.
아이들이 거부할 까봐.
그런데도 아이들은 거부했다.
집에서 먹을 시간이 없다는 둥,
아직 많이 남았다는 둥.
거부를 당한다는 것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유쾌한 일은 아니다. 거부당할 때 마다
서운함이 쌓이기 시작했는데,
냉장고에서 곰팡이 낀, 내 음식을
보았을 때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모두 버리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나온 것이 몇 번이었던가.
그런데도 도돌이표 처럼,
힘들게 일하고 퇴근한 아이들이 먹을 것이
변변치 않으면 어쩌나 하고 다시 음식을 싸가곤 했다.
썩은 음식을 왜 냉장고에 그냥 두냐고 책망하면
엄마의 음식이기 때문이란다.
"난 네 뱃속에 들어갔다고 생각할 테니 버리라"고 했다.
"네가 먹었다고 생각할테니 버리라"고 했어야 했는데
내 말에는 신경질이 묻어나 있었음을 딸들은
알았을거다. 나의 음식은 서로에게 부담이 되어
가고 있었고, 나의 서운함은 음식을 통해
분출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2년간 반복되다가 잦아 들었다.
아이들이 좀더 멀리 이사를 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끼니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기로 하자, 시간이 많아졌고, 해방감이
느껴졌으며, 거부당한 일에 대한 서운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세끼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나의 집착은
전쟁을 겪은 엄마에게서 아주 뿌리 깊게
교육되어 온 것 같다. 100세 가까이 살다가신
엄마는 자식을 보면 늘 "먹어라", "자라"라고 하셨다.
어려운 시절 8남매를 키우시며 먹고 자는 것이
늘 부족했던 엄마에게 절실한 것이었을 테니.
나는 자주 돌아가신 내 엄마의 음식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의 음식은 고향 내음이다.
엄마가 해 주시던 음식을 흉내내어
만들어 보다가 엄마의 얼굴을 생각하고,
손마디 굵은 억센 손을 생각하고,
투박하나 속 깊은 말씨를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의 음식은 추억이다.
고급스럽고, 사치스런 외식에 길들여져 있을지라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은, 엄마의 소박한
음식으로 채워진다. 아이를 낳고 먹던 찹쌀 새알
미역국, 두루치기, 헛제삿밥, 그리고 쌈장.
오늘도 나는 엄마에게서 배운 비책으로 만든
쌈장으로 쌈을 싸 먹고서야 포만감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씩 우리 딸들이 나의 음식을 찾을 때면,
그 허기짐을 달래 주려 음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