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섬 나라입니다.
1804년 아메리카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독립했으며, 노예들의 반란으로
독립을 쟁취한 국가 입니다.
출처 구글 지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후,
이 지역은 스페인이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스페인의 국력이 쇠퇴하자
프랑스가 이 곳을 대신 차지하고 생 도밍그
섬이라 불렀습니다.
백인 정복자들은 생도밍그 섬에 들어와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설탕을 만들어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팔았고
커피도 경작하였습니다.
당시 유럽 설탕 소비량의 절반이
이곳에서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장 주인들은
프랑스의 귀족 못지 않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필요한 노동력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와서 조달했습니다. 원주민은 전염병으로
모두 죽었기 때문이었죠.
당시 생도밍그 섬에서 유럽 사람은 3만 6천 명
정도인 반면, 아프리카 출신의 노예 인구는
약 50만 명이었습니다.
비참한 노동과 속박으로 노예들은 병들어
죽는 경우가 허다 했지만 농장주들은
걱정하지 않았지요. 노예들은 언제든지
사올 수 있었으니까요.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노예들은 한 자리에
모였을때 자신들의 관습을 지키고 종교 의식을
치르면서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위로 했습니다.
그들의 종교 의식인 부두교에서는
사제가 죽은 시체에 어떤 의식을 치르면
시체가 벌떡 일어난다고 합니다.
좀비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인 생도밍그 섬의 노예들에게도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인 평등 사상이 전해졌지요.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지 3년 후,
아이티의 노예들이
백인들의 저택을 불지르고 농장주인들을
죽이기 시작했어요.
혼란한 틈을 타서 스페인이 생도밍그 섬을 다시
차지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습니다.
이때 노예였던투생 루베르튀르가,
역시 노예 출신 장 자크 데살린을 부관으로 삼고
스페인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투생 루베르튀르 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 혁명 정부는 투생 루베르튀르의 공을
인정하여 그를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생도밍그 섬에서 평등을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예전의 농장 주인을 되돌아오게하고,
아프리카인들이 농장에서 일하게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농장 주인들과 아프리카인이
똑같이 일하고 소득을 똑같이 나누며, 백인들이
흑인들을 매질하고 억압하는 것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프랑스 대혁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하고 있었습니다.
투생을 총독으로 임명 하였던 정부가 사라지고
나폴레옹이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처남인 샤를 레클레르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2만 여명 군대를 보내었습니다.
그리곤 투생을 체포하였습니다.
투생은 알프스의 추운
감옥에서 일년도 못되어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이 다시 노예생활을 시작해야할 즈음,
생도밍그 섬에 말라리아 (황색열병)가
무섭게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군인들이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지요. 4주만에 4천명이 죽고
나폴레옹의 처남 샤를 레클레르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때 투생의 부하였던 사람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또 다시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싸우다가 죽어버리자고
결의 했습니다. 병으로 죽어나가던 프랑스군은
분기탱천한 노예들에게 항복할 수 밖에 없었지요.
드디어 장 자크 데살린은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생도밍그 섬을 아이티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국기에서 가운데에 있는
흰 띠를 찢어 버렸습니다.
흰색은 프랑스왕실을 상징하는 것 이었거든요.
그래서 아이티의 국기는 빨강과 파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티 국기 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