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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Oct 10. 2020

위기의 민주주의

넷플릭스 다큐


이 다큐의 부제는룰라에서 탄핵까지이다.

지난 3월 이 다큐를 보게 되었을 땐,

룰라 대통령에 대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보게 된 것은 1년간 불타고 있는

아마존과 브라질 정부의 방관이 의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 다큐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인간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으며, 그것은 브라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출처 2020/9/21 MBC 뉴스데스크



브라질은 1964년부터 1985년까지 군사독재

시대였다. 룰라는 군사독재시절인 1975년

금속노조위원장에 당선되면서 노동자들의

권리신장을 위한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1979년 노동자당을 창당하고,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첫번째 임기를 시작하고

2007년 재선되었다. 2011년 후계자인

노동당의 지우마 호세프가 뒤를 이었다.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하는가





룰라의 이 말은 그의 정책 방향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재임기간에 실시된 볼사 파밀리아 정책은

극빈층 가족에게 음식구입 지원,

연료비 지원, 취학을 지원하였다.

2천 만명이 가난에서 벗어났고,

대학 다니는 아프리카계 국민의 숫자가

세 배로 뛰었다. 실업률은 역사상 최저

수준이 되었다. 세계 경제가 붕괴된

가운데 브라질은 세계 13위에서 7위의

경제 대국으로 뛰어 올랐다. 또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 매장량을 발견, 그것을 사회

정책에 투자하는데 사용했다.


룰라 대통령 부부 출처 위키미디어


룰라는 보수세력을 러닝메이트로 지목했고

우파정당과 정책 연합을 구성하는 등 반대

성향세력들과의 소통에도 노력했다.

2011년 룰라의 퇴임 시기 브라질 사람들의

지지율은 87%였다.


2010년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가 룰라의

후계자로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파인

민주운동당은 보수정치가인 당대표 테메르

부통령으로 삼으라는 요구를 했다. 룰라는

그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2013년 6월 아랍의 봄을 계기로 버스요금

인상에 대한 작은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들의 폭력행위가 알려지자 큰 시위로

발전했다. 20년만에 가장 큰 시위가 일어나면서

국민들이 분열했으며 노동자당은 더이상

사람들의 꿈을 모으지 못했고 오히려 노동자당이

타겟이 되기 시작했다.


이 시위가 있기 바로 전 지우마 대통령의 인기는

최정점이었다. 그녀는 군사독재 시절 치열하게

민주화 운동을 했으며 룰라보다 더 급진적인

정책을 펼쳤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출처 위키미디어


지우마 대통령은 브라질 민주운동당인사들을

정부요직에서 해임하고 이자율을 낮춰서

은행가들에게 도전했다. 

그러나 경제는 가라앉기 시작했고 시위는 

정부의 지지율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지우마는 반부패법안들을 발표했고

국영 거대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가 조사를

받게 되었다. 수사관들은 부패의 그물망을

밝혀내었고 부패에는 여러 정당들이 얽혀있었다.


이른바 세차작전이라 불리우는 태풍이 시작되었다.


세르지오 모루 연방 검사는 페트로브라스가

대형납품업체와 계약할때마다 1-3%를

뇌물로 떼어갔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뇌물은 오랫동안 브라질에서 늘

있어왔던 관행이었으므로 부패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비자금을 안받았다고 하는

정치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세차작전 시기, 사업가들이 비자금에 대해

증언하자 노동당을 비롯한 여러당의

정치가들이 체포되기 시작했다.


2014년 대선에서 지우마 호세프에게 패배한

아에시우 네베스는 선거결과에 불복하고

재검표를 요구했다. 결과가 바뀌지 않자

대통령 탄핵운동을 전개했다.


대선 9개월 후, 지우마의 노동자당을 범죄

집단이라하며 탄핵 운동을 전개했으며

우익단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대중들의 반부패 정서를

건드려 지우마와 룰라 그리고 노동자당에

반대하는 폭동으로 번져갔다. 그들은

지우마와 룰라를 기괴하게 표현한 캐리커쳐를

들고 나와 시위를 했는데, 언론은 그들의

시위를 보도하면서 그들의 공격적 행태를

정상으로 보이게하는 역할을 했다.


세계경제가 쇠퇴하면서 지우마는 당초 약속과

달리 긴축정책을 폈다. 실업률이 8%, 400만명

이상의 브라질 국민이 빈곤상태가 되었다.

2015년 의회에서 탄핵이 결정되었다. 지우마는

탄핵은 불법적이라고 항변했다. 그녀의 주변에

회계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의혹은 없고, 자신은

국외계좌도 없다고 주장했다. 

룰라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세차작전이 한창이었을때 연방검사 세르지오 모루는

룰라를 구금하라고 명령했다. 룰라가 세차작전

스캔들에 연루된 건설사로부터 아파트를 제공받았다는

혐의였다. 언론에서는 룰라 가족들의 집을 급습해

수색하는 장면이 비춰졌다. 

그것은 그가 유죄라는 인상을 주었다.


불만에 차서 눈감고 귀닫은 사람들은 

거리에 나와 무조건 그 두 사람을 비난했다.


지우마에 대한 탄핵사유는 부실한 회계. 

공공은행으로 보낼 기금을 늦게 보낸 것 등이었다. 

정식 기소절차도 없었다. 마치 쿠데타와 같았다.


노동자당도 기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았다.

한 쪽발은 체제에 담그고, 한 쪽발은 사회개혁에 담근 채,

브라질의 다른당과 똑같이 오래된 부패 관행에

끌려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가 노동자당은

다른당과 다르게 대할 것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룰라의 후회는 자신의 재임기간에 언론 규제

법안을 발의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9개 가문이 브라질 언론전체를 경영하고 있다.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수백년간 지배층이다.



탄핵 2주후, 검찰은 룰라를 부패혐의로

기소했다. 세차작전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과 가까웠다는 혐의이다. 검찰이 룰라가

유죄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아파트의 법적 소유자가 룰라임을 증명할 수 없다.


구아루자의 3단 복층 아파트 소유자가 룰라라고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진짜 소유관계를 숨겨놓았다는 것이다.




검사의 이 궤변은 룰라가 전체계획을 세운

증거로 사용되었다. 룰라의 아내 마리자도

아파트건으로 기소되었다. 넉달 후, 

마리자는 뇌졸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룰라에게 모루 검사는 9년 6개월형을 선고 했으며 

나중에 12년으로 늘어났다.


테메르 부통령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80%의 국민은 테메르가 수사받기를 원했지만

정치가들은 신경쓰지 않았고 주식 시장은 환영했다.

테메르는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거의 다 둘어줄 것이니까.


그리고 엘리트 계층은 극우정치인 보우소나르

주목했다. 그는 시장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최적의 대안으로 생각되었다.


대법원은 구속을 막아달라는 룰라의 상소를 기각했다.

룰라는 브라질 대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의도라며 상고했었다. 

결국 룰라는 구속되어 현재 수감중이다.


탄핵 6개월 후, 2018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르가

승리했다. 그는 육군 대위 출신이며 독재 정권시절,

고문과 암살로 악명 높았던 사람이다.

그는 브라질의 트럼프라고 불리운다.

세차작전을 주도했던 모루 검사는 법무장관이 되었다.



현재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르 출처 위키미디어


출처 2020/ 9/ 21 MBC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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