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감정은 부끄러웠다.
두 번째 감정은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내내 이어지고 있는 감정, 고맙고 벅차다.
첫 시집과 함께 보내온 짧은 글을 보고 나서였다.
“저에게는 잊지 못할 스승이십니다!”
몇 년 전, 이 년 동안 모 백화점 문화센터 강남점에서 시 창작을 강의했었다. 대표 매니저로부터 강의 의뢰를 받고 처음엔 망설였다. 수강생들 대부분이 나보다 연세가 많다는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정년 퇴임한 고위직 공무원 출신, 교사 출신, 수필가와 사진작가 등 예술에 문외한이 아니라는 것도 괜찮았다. 오히려 좋았다.
“여긴 강남점이라 저흰 더 심사숙고해서 강사를 모시고 있어요. 다른 점에 비해 수강생들의 컴플레인도 많고요. 아무래도 고학력에 부유층이 많다 보니 그렇겠지요.”
시 창작 교실에 ‘강남점’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강남점이기 때문에 왜, 강사를 초빙하는데 더 심사숙고를 한다는 건지, 고학력에 부유층이면 교단의 절대성은 지켜지지 않아도 된다는 건지, 그것이 내 심사를 거슬렀던 것 같다.
첫 강의!
아마 완전무장을 하고 나갔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필요 없는 정보를 너무 많이 들은 내 오판이었음을, 나는 첫 강의를 마친 즉시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들이 보여주시는 예의와 공손함, 시에 대한 그리고 시를 가르치는 강사에 대한 신선하고도 뜨거운 열정, 망설였던 시간이 아깝고 정보를 내 멋대로 해석해 날을 세웠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우린 이 년 동안 참 열심히 시를 읽고, 썼으며, 수강생들의 시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 년 동안 맡아온 강의를 내 개인 사정 때문에 후배 시인에게 넘겨주고 마치던 날, 그래서 아쉬움은 없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시인협회나 시 낭송회장에서 만나게 될 몇몇의 수강생들이 눈에 보이는 걸로도 보람은 충분했다.
그런데 오늘, 그중의 한분이 등단 소식과 함께 상재한 첫 시집을 받은 것이다. 부끄럽고도 벅찬 고백과 함께! 그때 시 창작 교실의 반장을 맡으셨던 분, 강의를 그만두겠다는 내게 수차례나 전화로 말리며 ‘우리는 어떡하라고요. 선생님.’ 하며 나를 울컥울컥 눈물짓게 했던 분.
세 번째 그분의 시집을 정독하며 그때의 시간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톡이 울린다.
“5월 30일에 제가 시집을 출간한 의미로 선생님께 함께 강의를 들었던 동료들과 식사를 하기로 했어요. 모두들 선생님의 빈자리를 그리워했던 분들입니다. 선생님, 꼭 나와 주세요.”
©픽사베이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나는 벌떡 일어나 달력에 붉은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30일이 햇덩이처럼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