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치매 초기 진단을 받으셨을 무렵의 일이다.
엄마가 주변 분들과 대화가 어려워지자
말동무들이 하나 둘 엄마 곁을 떠나갔다.
아버지가 외출하고 안 계신 날이면,
엄마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가끔 우리 식당을 찾아오시곤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우리 가게를 찾아오실 수 있었다.
가게에 오신 엄마는 행복한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우리 큰딸이 가까이 사니 참 좋아.
네가 여기 안 살았으면
내가 심심해도 갈 때가 없었을 거야.
보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와도 되고
가고 싶을 때 그냥 가면 되고.
어느 가을날.
엄마는 집 근처 화원에서 국화를 사셨다며
먼길을 들고 오셨다.
엄마는 가게 현관문 앞에
국화 화분을 내려놓으시고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가을에는 가게 앞에 국화 하나는 있어야지.
가게 뒤뜰에는 제 몫을 다한
화초들이 모여 소박한 정원을 이루어 살고 있다.
겨울이 찾아올 때쯤이면
자기 몫을 다해낸 국화들도 뒤뜰에 모인다.
오늘 아침.
시들시들 목마름을 호소하는
국화들에게 물을 주었다.
그곳엔 엄마가 사 오셨던 국화도 있었다.
그때 문득 가슴에 묻어나는 엄마 생각.
엄마,
엄마는 국화를 닮았어.
모진 겨울의 눈바람과 혹독한 추위를
맨몸으로 이겨내며 봄을 기다리는 국화.
봄이 되면 죽은 가지 사이로
파란 잎새들이 올라온다.
말라버린 가지들을 잘라내고
빈 화분에 쿡쿡 구멍을 내고 국화들을 심는다.
별다른 거름을 주지 않아도 쭉쭉 키를 키워내고
물 달라며 축 늘어져있던 가지들도
물 한 모금에 다시 싱싱하게 일어서는 국화들.
무더운 여름의 땡볕 아래에서도
국화들은 꿋꿋하게 자라준다.
그리고는 자연의 모습 그대로 성장하여
가을의 정취를 담아 우리를 부른다.
며칠 전 요양병원을 찾아간
올케가 엄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 어머니, 아버지 안 보고 싶으세요?
- 아니, 하나도 안 보고 싶어.
- 자식들은요?
- 자식들 다 잘 살고 있는데 뭘 보고 싶어.
괜찮아~
올케 말에 의하면 전혀 서운한 모습이 아니고
안심하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 어머니 목소리가 기운 없으시네.
어디 아프세요?
- 안 아파. 이상 무~.
그 날 이후 엄마는 말을 잊어버리셨다.
일생의 어려웠던 순간들을 이겨내신 지혜로
이제 엄마는 병마와 담담하게 싸우고 계신다.
엄마!
엄마가 자꾸 지워지는 기억을 안타까워하시며
일기에 쓰신 글귀가 생각나네요.
"하늘나라에 갈 준비나 잘해야지"
"과제 제1의 희망이 천국행"이라고.
엄마,
저도 함께 기도 할게요.
그런데 엄마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누구보다도 더 주님 자녀답게
주님 안에서 살아주셨어요.
이웃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국화보다 더 예쁘게 사셨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