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

by 곽성숙


엄마에게 치매가 들어온 이후

나는 한 달에 서너 번 국과 반찬을

부모님께 갖다 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가지고 간 음식이 거의 줄지를 않는다.


왜 안 드셨을까.
밖에서 드실 일이 많으셨나?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맘이 무겁다.

음식을 갔다 드리고 온 어느 날 저녁

남편에게 말했다.


아버지께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으신가 봐.
엄마가 노치원서 두 끼를 드시고 오신다 해도

음식이 거의 줄지 않는 것이 이상해.

그날 이후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친정집을 드나들었다.


아버지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온 것을

포착한 남편은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제발 우리 집 근처로 이사하세요.
이제는 자식 근처에서 보호받으시며

사셔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만큼 좋은 데가 어디 있다고 이사를 가?
이삿짐은 또 어떻게 싸라고.

그 저변에는

자식에게 짐을 더 지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깔려있었다.

그러나 점점 병이 깊어지자

아버지의 고집이 꺾이셨다.

승낙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동산을 찾았다.

혹여나 맘이 바뀌실까 봐

서둘러 비어있던 아파트를 계약해버렸다.

3일 만에 일사천리로

이사를 단행한 그 날 저녁이었다.


한창 바쁜 식당의 저녁 시간.
핸드폰의 벨이 울린다.


누가 이 시간에 전화를 하지?
전화기에 아버지 이름이 뜬다.


웬일이실까?
갑자기 맘이 조급해진다.


- 여보세요?
- 마리아야, 내가 죽게 생겼으니 빨리 좀 와라.


놀란 남편과 나는 하던 일을 집어던지고

이사하신 친정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 주세요.


달려가는 내내 나는 화살기도를 마구 쏘아댔다.

친정집에 도착해보니

아버지는 안방 침대 밑에 쓰러져계셨다.

방바닥에는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와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 앞에 쭈그리고 앉아

휴지로 피를 찔끔찔끔 닦으시며

이런 말만 반복하고 계셨다.


너네 아버지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건강했던 사람인데.

119로 급히 병원에 실려가신 아버지.
광범위한 위궤양에 천공이 생기기 일보직전이었다.


게다가 피가 많이 소진되어
죽음의 문턱을 넘을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어머니를 모시며 스트레스가 병이 되신 것이다.

나흘 뒤 퇴원하신 아버지는
그날을 회상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너희 아니었음

난 지금 땅속에 들어가 있었을 거야.
너희가 날 살렸어.
이사를 안 했음 어떡할 뻔했나 모르겠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감개무량하셨나 보다.

다시 삶을 찾으신 아버지는

소중한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를
계획하시며 감사함으로 늘 새날을 시작하신다.

어느 날 가게에 오신 아버지는

직접 쓰신 원고를 한 장 내미시며

시간 날 때 한번 읽어봐 하신다.


글의 제목은 "본향”이다.

86세 어르신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여정.
그 앞에서 죽음을 대하시는 시각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잡아주는 유언 같은 글.
내용을 요약해 적어 보았다.

-


가족이란 행복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이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 양부모가 떠나고 나면

온 가족이 다시 모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족을 연결시켜주던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무엇으로도 이 고리를

다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중략)

우리가 가는 곳 어디에나

죽음의 소식이 있습니다.
나의 부모님도 천국 여행을 떠나신 지

오래되셨습니다.


이제 다시는 여기에 오지 못하십니다.
사랑을 나누고 함께 했던 동료, 친구들도

이제는 다 떠나가고 몇몇만이 남았습니다. (중략)

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이 있고,
땅 위에는 산과 바다와 강이 있고

바다에 떠오르는 일출과 석양.


들판에는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이 자라고

울창한 숲, 탐스러운 과실과 꽃, 낮과 밤의 조화,

이 모든 것들은 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우리의 본향은 아닙니다.

이곳은 잠시 머무는 숙소이자 장막일 뿐입니다.

성경 시편 90장 1절에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습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주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며 안식처입니다.


이 땅은 잠시 세 들어 사는 곳이며

가르침을 받는 학교일뿐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본향이 아닙니다.(중략)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용서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며 서로 보살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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