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성숙 Feb 02. 2020

우리 집 설 풍경


1. 음식 준비

몇 년 전부터 설날 먹을 음식을

동생들과 분담해서 해오고 있다.


남동생은 소갈비찜과 음료와 간식을,
여동생은 전과 나물류를 준비해 온다.


내가 맡은 음식은 떡국과 찌개류이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모이니

겉절이와 밑반찬, 식혜를 더 준비했다.


그리고 저녁에 먹을 보리 누룽지도 준비했다.
보리 누룽지는 종일 이것저것 먹어 거북한 위에

부담이 없도록 간단한 식사 대용으로 준비했다.



2. 설날 아침


명절엔 집안이 좀 떠들썩해야 명절이 아닌가!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맞이하는 첫 명절인데다
모이는 식구도 팍 줄었다.


삼사 년 사이에 우리 아들 딸이 결혼하면서

모이는 식구들이 늘어나는 듯했다.


그런데 올해는 엄마도 안 계시고

홍콩에 사는 시집간 딸도 못 온단다.


게다가 군대에 간 조카, 외국 유학 간 조카 두 명까지

모두 빠지다 보니 쓸쓸한 명절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들네 식구들을 설 전날 오라고 했다.
남동생 부부도 설날 아침 일찍 오기로 했다.

식구들 모두가 옹기종기 함께 모여

떠들썩한 명절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아침 일찍 모인 식구들끼리 명절 기분을 내며

떡만둣국을 끊여 먹었다.


떡과 만두 사골국물까지 모두 사제품.
나도 설 전날까지 식당 문을 열었기에

직접 만두를 만드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그래도 모두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담소도 나누는 행복한 설날 아침이었다.

아침식사를 끝낸 식구들은 부랴부랴

미사 봉헌을 위해 성당으로  향했다.


우리 집은 돌아가신 조상님들께  

차례 대신 미사 봉헌을 하기 때문이다.

대전 여동생 가족도 성당에서 합류하여

연도와 미사 봉헌을 함께 했다.


3. 점심

각자 정성스레 준비해온 설음식들로

한 상을 차려 놓으니 진수성찬이다.

특히 올케의 소갈비찜은 최고였다.
명절 때마다 소갈비찜을 해오더니

이제는 선수가 되었다.


식구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홍콩댁 우리 딸에게 영상 통화가 들어왔다.


가족들이 서로 돌아가며 왁자지껄 인사를 나누던 중 15개월 된 우리 손녀딸 차례가 되었다.


고모를 알아보고는 반가움에 큰소리로  

아기구헤구졸리둘리 어쩌고저쩌고

아기 나라 말로 신나서 인사를 한다.
박장대소가 터지고 손녀는 더 신이 났다.


딸은 설날이라 한식이 먹고 싶어

감자전과 불고기 그리고 김밥을 해 먹었단다.


조금 있으니 이태리에 있는

수도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잠겨 있다.


창설자 탄생 백주년 기념행사로 무리를 했는지

목감기가 들어왔단다.

외국에 있는 관계로 명절을 함께 한 기억이

거의 없는 우리 동생.


떡만둣국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오늘은 얼마나 만둣국이 먹고 싶을까!


감기까지 들어와 몸도 힘들 텐데  

내가 어떻게도 도와줄 수 없음에 마음만 아프다.


그리고 이태리에 유학 간 조카도 전화가 왔다.
식구들이 모두 보고 싶어 영상 통화를 했단다.
타국에서 혼자 명절을 맞이하면

더 가족 생각이 날 것 같다.
야무지게 혼자 열심히 공부하는 조카가 대견하다.

점심 상을 치우고 아버지께 세배를 드렸다.
처음으로 혼자 받으시는 세배.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어린 조카들이 없으니 세배도 금방 끝났다.
 
그런데 시간이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벌써 3시 30분이다.


급히 서둘러 엄마가 계신 추모관으로 향했다.
작년 설엔 같이 윷놀이도 했던 울 엄마.
요번 설엔 추모관에서 엄마를 뵙는다.
산다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허망함.
쓸쓸히 혼자 계신 엄마를 뵈니 눈물이 고인다.
엄마 앞에 모두 절을 올리고 연도를 바쳐 드렸다.

4. 저녁


집에 돌아온 가족들을 위해

보리 누룽지탕을 끊여 조촐한 상을 차렸다.


모두들 안 먹기는 서운하니 조금씩만 먹겠단다.
그런데 이 보리 누룽지탕이 대박이  났다.


조금씩만 먹는다더니,
맛있다.
구수하다.
하며 자꾸들 추가 주문들을 한다.


여유 있게 끊인 줄 알았던

보리 누룽지탕이 바닥이 났다.


아쉬움을 달래며 모여 앉아 다과를 즐기는 자리.
우리 손녀딸의 재롱잔치 시간이었다.


할아버지(남편)의 신나는 자작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서는 크게 몸을 흔들어 춤을 추고,


증조할아버지의 동요 하모니카 소리에는

작은 동작으로 음을 표현해낸다.


고 작은 것이 음을 알고 동작을 다르게 해내는  

모양새에 모두가 웃었다.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의 빈자리를  

우리 손녀딸이 차고 넘치게 채워 주었다.

웃고 떠들다 보니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명절증후군을 모른다.

큰 부담 없이 명절을 맞이하고
남자든 여자든 설거지를 자청하고 나서니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 집 명절은

모두가 모여 행복한 시간이며

헤어짐이 아쉬운 사랑의 순간들이다.


작가의 이전글 넘버원 우리 사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