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비판적 사고가 필수라고요?

by N잡러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중심이 되는 말은 미디어보다는 리터러시이다. 왜냐면 미디어 리터러시의 의미가 ‘다양한 미디어(매체)에 접근해서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더 해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인데 이 의미 안에서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활동을 리터러시라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미디어 환경을 보면 접근, 표현, 소통은 너무나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인 후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은 미비하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기존의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려면 비판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제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비판적 사고에 대해서 알아보자.

비판적 사고는 아이들의 교육을 처음 시작한 20년 전부터 현재까지 수업하고 있는 환경에서 끊임없이 언급되었다. 어느 시대나 교육에 관련된 유행하는 단어와 현상들이 있다. ‘나 대화법’ ‘자존감’ ’회복 탄력성’ ’비폭력 대화’ ’감정 코칭’ ‘PET교육 (부모역할훈련)’ 등등 각각의 단어를 세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언급된다는 것은 중요하기도 하지만 비판적 사고를 높이기 위한 교육목표에 닿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마다 한국 학생들의 학습능력의 수치는 낮아진다. 아이들과 수업하는 현장에서는 훨씬 직접적 체감을 한다. 비판적 사고는 일반적 사고 다음의 순서이다. 아이들은 사고력에 대한 훈련도 되어있지 않고, 사고력이 바탕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원인과 결과를 찾는 문제를 굉장히 힘들어한다. 국어에서 자신의 생각을 적으라는 문제를 가장 어려워한다. 다른 문제는 눈으로 읽기는 하나, 이해하며 읽지 않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로 문제를 풀거나, 문제를 전혀 풀지 못한다. 그래서 엉뚱한 답을 쓰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유아를 수업한 지는 20년, 초등 교과목 수업은 10여 년이 되어서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정말 많다. 20년 전, 10년 전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모든 연령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연령은 7~9세의 아이들이다. 평균 신장과 언어지수가 높아진 반면에, 이해력을 동반한 학습능력이 현저히 낮아졌기에 어른들이 자칫 아이들이 어른스럽고 똑똑해졌다고 착각할 수 있다. 세대의 특성상 미디어에 대한 활용 능력 또한 뛰어나니 이러한 착각이 확신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의 영향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사고력, 비판적 사고를 반드시 함께 거론된다.


최근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판적 사고 역시 그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 반가운 일이지만 디지털의 원주민이고, AI 원주민인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환경이 꼭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미디어리터러시 가르치는 지도사는 비판적 사고에 대해 명확히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비판적 사고의 뜻을 검색해보면 ‘객관적 증거에 비추어 사태를 비교·검토하고 인과관계를 명백히 하여 여기서 얻어진 판단에 따라 결론을 맺거나 행동하는 과정’이라고 어렵게 표현되어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판단할 때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외국의 경우 미디어리터러시 과목이 정규수업안에 안에 있고 수업 내용 중 비판적 사고를 위한 체크리스트도 있는데 6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실과 의견 구분하기

둘째, 주장이나 정보원의 신뢰성 평가하기

셋째, 진술의 정확성 평가하기

넷째, 주장이나 진술의 편견 탐지하기

다섯째, 논리적 비일관성 평가하기

여섯째, 주장의 강도 평가하기


미디어 리터러시가 무엇인지에 논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위의 여섯 가지이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체크리스트에 나오는 단어들이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어서 이러한 비판적 사고를 위한 리스트의 내용을 조금 쉽게 이해하기 위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한다. 이 에피소드는 소크라테스의 ‘체로 세 번 거르기’라는 제목의 일화인데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의 지인이 급하게 들어서며 “소크라테스, 이럴 수가 있나? 방금 내가 밖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나? 아마 자네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랄 걸세.”라고 이야기하자 소크라테스가 지인에게 전해주려는 소식을 체로 세 번 걸렀는지를 확인하며 세 가지 질문을 한다.

소크라테스 : “첫째, 진실의 체에 걸렀는가? 지금 말하려는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신하는가?”

지인 : “글쎄….”

소크라테스 : “둘째, 선의의 체에 걸렀는가? 자네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선의에서 나온 내용인가?”

지인 : “글쎄…아닌 것 같네만….”

소크라테스 : “셋째, 중요함의 체에 걸렀는가? 급하게 뛰어들어올 만큼 중요한 내용인가?”

지인 : “그렇지 않네”


그다음 소크라테스의 반응은 상상이 갈 것이다. 듣지 않겠다고 하는 것까지만 일화로 나온다. 그 이후 지인의 반응을 내 다름대로 상상을 해 본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인: “내가 자네를 생각해서 해 주는 말인데, 이렇게까지 해야겠나?”라고 말이다. 무척 서운해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상이 된다. 왜냐하면, 이런 정서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학연, 지연과는 별개로 ‘정’이라고 하는 문화가 있다. 지금의 세대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젊은 층인 MZ세대를 보면 이성적인 면도 있지만, 온라인상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한국만의 ‘정’문화를 듬뿍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실과 의견의 경계선을 분명히 해야 할 순간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가 비판적 사고를 위한 교육의 경험이 부족한 점도 있지만 국민 정서의 원인이 더 크다고 생각된다.


이 경계의 모호함을 조금 더 확장해보면 비판적 사고를 함에 있어서 비판과 비난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비판은 ‘현상이나 사물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이고 비난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이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비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비난하려는 건지의 구분이 필요하고, 듣는 사람도 상대방이 하는 말이 비판의 의도인지 비난의 의도인지를 잘 구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는 일은 단어의 의미를 알았다고 해서 짧은 시간에 되지는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어떠한 문제 발생했을 때 비판과 비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려고 하는 노력만으로도 미디어 리터러시를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keyword
이전 12화11. 뉴스 소비자에서 생산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