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89년 7월 1일에 만 19세 이하의 소년에 한하여 보호관찰 제도가 본격 실시되었습니다. 이 제도는 1841년 미국 보스턴시의 제화공이며 금주협회 회원이던 존 어거스터스가 알코올 중독자인 범죄인을 자기 보증 하에 석방시켜 보호 선도한 활동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소년부 판사는 심리 결과 보호처분을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면 1호부터 10호까지의 처분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중 4호는 보호관찰관의 단기 보호관찰(6개월)이고 5호 보호관찰관의 장기 보호관찰(2년)입니다. 소년원을 00 소년원이라고 하지 않고 00 학교 등으로 부르는 것처럼 보호관찰소 역시 ‘준법지원센터’로 2017년부터 바꿔 부릅니다.
이 00 사회 복지사는 이런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990년 처음 실습을 받을 당시엔 갱생보호소라고 불렀으며 건물도 허름하고 체계적이지 않았다고 회상합니다. “2017년에 가서 보니까 일단 건물이 번듯했어요.” 보호관찰관이 담당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되는지 물었습니다. ”보호관찰관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맡는 아이들의 수가 많대요. 150명 내외.”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저 역시 놀랐습니다.
현재 만나고 있는 아이는 어떤 아이인지 묻자, “두 번째 보호관찰받은 아이예요. 술 먹고 절도를 저질러서, 분류심사원에 4주 가있었죠. 재범이니까. 판사 앞에서 갈림길인 거야. 잘못 말했다가는 소년원으로 직행할 수도 있는 순간에, 정말 잘할 거라는 걸 어필을 한 거죠. 그래서 다행히 소년원 안 가고 보호관찰 2년을 선고받은 거죠. 그래서 내년 5월에 끝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00 사회복지사가 만난 아이는 소년원이 아닌 보호관찰로 5호 처분을 받은 것입니다.
보호관찰소는 소년원처럼 격리 수감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보호관찰되는 걸까요?
“한 달에 두 번 가서 체크를 받아야 돼요. 아이들의 범죄 경중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아이는 두 달에 한번, 어떤 아이는 6개월에 한 번. 어떤 아이는 일 년, 기간도 다 다른 데 가서 들어보니 깊이 있는 면담은 안 되는 거예요. “너 요새 어떻게 지내냐? 사고 안치냐?” 이렇게 간략하게. 그리고 연락이 안 되고 잠수 타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러면 보호관찰 담당자는 강제권이 있으니까 찾아간다든지 가끔 부모 하고도 연락하죠. “ 보호관찰 담당자는 지도, 감독, 야간 외출 및 특정 지역 출입제한 등의 보호관찰 준수사항을 지키도록 하는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150명 내외의 아이들을 담당하다 보니 관리가 잘 안 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담당자가 1년의 한 번 정도로 자주 바뀌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 대해 연속성이 없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아이들이 관찰 담당자에게 거짓말을 해도 확인할 길이 없고, 시간도 없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습니다. 담당자의 열의는 기대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어서 김 00 사회복지사가 보호관찰소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담당자들에게 상담일지를 보내요. (아이들을) 한 번 만나면 두 시간 정도 상담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꼼꼼하게 쓰니까 그 아이의 중요한 삶의 이슈들은 보게 되죠. 우리는 상담사의 마인드로 공감, 지지, 격려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물론 내가 그 아이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가 살면서 나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계획 세우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시시콜콜하게 계획을 짜거든요.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죠.” 이 00 상담자를 만난다는 건 그 아이들에게는 굉장한 행운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무료 자원봉사임에도 계속하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또한 충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원봉사자에 대해 바뀌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갔습니다. “우리의 처우에 대한 위상이 미미한데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죠. 개선이 되어야 하죠.” 보호관찰관의 과다한 업무량, 아이들과 상담하는 능력을 키울 수 없는 구조는 보강되어야 할 부분이라며 현장의 경험자다운 대안을 제시하며 만남을 끝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