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질문에 잠시 망설였다. 할머니'처럼' 주름 가득한 할머니가 되는 내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이 순수한 눈빛의 아이에게 "엄마는 늙는 게 정말 싫다" 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다. '나이듦'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시키듯, 아이에게 대답했다.
"그럼~엄마도 언젠가 손도, ,얼굴도 쭈글쭈글해질걸."
지금도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결코 익숙해 지지 않고 여전히 온 마음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나이 듦'인가 보다.
우아함의 속도는 안단테(Andante)
"우아하게 늙고 싶어"
대학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면 꼭 빠지지 않는 주제 - 나이 듦을 이야기할 때면, 나는 '우아함'을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내 머릿속의 '우아'를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겠다. 혹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우아함' 이 나와 전혀 다르다면, '우아하게 늙고 싶다'는 나의 의지적 표현이 오해를 받을 지도 모르니... 나의 머릿속의 '우아함'은 어느 영화 속 귀부인처럼 힘든 일은 아랫사람들에게 맞기고 커피와 수다를 즐기는 그런 우아함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쉽사리 다가서지 못하는 아우라를 풍기는 그런 '고상한 세계'의 우아함도 아니다.
우아(優雅)함은 한자 풀이를 해 보면 좀 더 설명이 쉽겠다. '우아(優雅)'의 '우(優)'는 넉넉할 우(優) 자이다. 사람 인(亻) 변과 근심 우(憂)가 합쳐진 자가 바로 넉넉할 우(優)이다. 근심, 걱정 많은 사람 곁에 서서 위로해 주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넉넉할까. 맑을 '아(雅)'는 어금니 아(牙)와 새 추(隹)가 합쳐진 한자로, 큰 부리를 가진 새가 어금니를 부딪쳐 내는 소리가 맑고 아름답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음에 근심 있는 사람의 옆에서 위로해 주는 사람의 넉넉하고 맑은 마음씨가 바로 '우아'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처함을 살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넉넉함이 있으면 태도도 여유로와진다. 식당에서 음식이 빨리 안 나온다고 '빨리빨리'를 외치는 모습은 절대 우아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툭툭 끊고 하고 싶은 말을 뱉어버리는 것 또한 우아하지 않다. 전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가방을 앞서 던지는 태도 역시 우아하지 않다. 우아함은 '한 템포 느리게'가 필요로 한다. 천천히 걷는 정도의 빠르기인 '안단테(Andante)' 의 속도라고 할까. 천천히 걸으면 보이지 않던 마음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이야기가 들린다. 나와 상대방의 처지를 좀 더 살피고 귀 기울이는 것이 우아함의 시작이다.
사실 '우아함'에 대한 짝사랑은 꽤 오래전부터였다. 나의 첫 아이가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우아한'을 넣은 태명을 만들어주었고, 아이의 이름에도 '우아함'의 뜻이 담긴 '빛날 연(娫)'을 넣어주었다. 아이의 삶이 우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에 대해,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진다면, 아이의 세상은 좀 더 평온해지지않을까?
"우아함은 세상과 편하게 지내는 것이다. 삶이 그대의 바지에 포도주를 쏟을지라도!"
('우아함의 기술' (사라 카우프먼) 중에서)
우아함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는 둘인데, 장난감이 하나밖에 없다면 매일 매일이 전쟁터다. 엄마의 평화로운 세상을 유지하려면, 똑같이 하나씩 장난감을 가져야겠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세상엔 가지지 못하는 것들도 많고, 나눠야 하는 것들도 가득차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장난감 하나로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매일매일 연습한다.
오늘도 누나가 장난감을 혼자만 가지고 논다며 둘째 아이가 와서 칭얼대며 치맛자락을 붙잡는다. 대뜸 달려가서 첫째 아이에게 동생이랑 같이 놀라고 다그치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오늘은 한 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조용히 아이에게 누나에게 장난감을 갖고 놀아도 되는지 물어보라고 알려준다. 아이는 무슨 대단한 비책을 받은 것 마냥 의기양양하게, 쪼로로 달려가서 누나에게 물어본다.
"누나, 이거 갖고 놀아도 돼?"
와락 장난감에 덤벼들지 않고 한걸음 뒤에 서서 물어보는 동생을 본 누나가 한 발 양보한다.
"갖고 놀고 싶어? 좀만 기다려."
그러더니 아주 잠시 놀고 바로 동생에게 장난감을 빌려준다. 아이들도 한 템포 늦춰주면, 좀 더 너그러워지는 듯하다. 그렇게 엄마의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다. 물론 매일매일 이런 아름다운 대화가 오고 가는 건 아니다. 결국 싸움이 되어 둘 다 울음바다로 끝나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조금씩 연습해가며, 상대방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짐을 배워가고 있다.
아이들도 이렇게 틈만 나면 와락 다투는데,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살아가는, 그리고 온갖 이해관계에 머릿속이 복잡한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먹고 보면 세상엔 불평할 일, 싸울 일들로 가득 차 있으니..그래서 어른들도 연습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좀 더 우아하게 살기 위한 연습 말이다. 자신에게, 상대방에게 한 발짝 물러서 친절을 베풀어줄 너그러움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 넉넉한 마음이 우리를 우아함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우리가 좀 더 우아해진다면, 세상이 좀 더 조용해지고 평온해지지 않을까.
"우아함은 가볍고 편안하게 걷게 해 주고, 다른 사람들을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하게 해 주며, 타인의 상냥함을 받아들이고 음미하게 해 준다. 우리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차원에 우아함이 존재한다." ('우아함의 기술' (사라 카우프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