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인데 시간만 흐른다
홍아, 때로는 봄에도 눈이 내리고 한 겨울 눈발 사이로 샛노란 개나리꽃이 저렇게 피어나기도 하잖아. 한여름 쨍쨍한 햇살에도 소나기가 퍼붓고, 서리 내리는 가을 한가운데에서도 단풍으로 물들지 못하고 그저 파랗게 얼어있는 단풍나무가 몇 그루 있는 것처럼, 이 거대한 유기체인 자연조차도 제 길을 못 찾아 헤매는데, 하물며 아주 작은 유기체 인간인 네가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해서 너무 힘들어하지는 마. 가끔은 하늘도 마음을 못 잡고 비가 오다 개다 우박 뿌리다가 하며 몸부림치는데 네 작은 심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해도 괴로워하지 마.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