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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관 Dec 15. 2020

so happy

ㅣ온전하게 일요일 아침을 맞이하는 방법

3시간을 끙끙거렸지만 결국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마음은 서늘한데 머리에서는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멀리서 여명이 밝아왔다. 11월의 6시 40분은 아파트 윤각이 겨우 드러날 정도로 어슴푸레했다.커피를 마실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딸기잼 바른 바싹한 식빵이 먹고 싶었다.옷을 대충 챙겨 입고 식빵을 사러 나섰는데 알싸한 새벽 공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새벽은 참 매력적이다.차분한 듯 하지만 잠들어있는 만물들 몰래 예민한 공기가 숨을 쉬고아침을 깨우기 위한 미묘한 기류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시간이다. 갓 구워 낸 식빵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았다. 한산한 거리의 신선함이 모두 내 것이었다. 머리는 식었고 마음에는 온기가 스몄다. 


토스터기 식빵


문득 그때의 보르도가 생각났다. 2007년도에 프랑스 보르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와인의 본고장답게 묵고 있던 민박집 주변이 온통 포도밭이었다. 이른 새벽의 포도밭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었고 포도밭 사이로 불규칙하게 허물어진 담벼락과 기둥들이 중세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너무나 멋진 보르도의 새벽 풍경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때 멀리서 바게트 빵이 담긴 누런색 종이봉투를 가슴에 안고 걸어오는 민박집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자줏빛 점퍼에 갈색머리의 아주머니는 그대로 풍경 속으로 녹아들었다. 보르도의 아침밥상은 바게트 빵과 딸기잼 그리고 에스프레소였다. 


동네빵집에서 식빵 한 봉지를 사면서 13년 전 보르도의 포도밭을 추억했다. 돌아와 방문을 열어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아직도 곤히 잠들어있었다. 행복이 밀려온다. 이렇게 일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 냉정한 평가는 좋은 글의 밑거름이 됩니다. 가감없는 댓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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