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침에 전화한 것도 잊어버리시는데요."
아들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노인요양시설에 계십니다. 살다 보면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사실 전화 하는 것도 점차 의미가 퇴색되어 간다고 생각됩니다.
기억이 지워지는 것은 그를 둘러싼 가족과 지인들에게 슬픈 일이지요.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환자에 대한 애틋함은 점차 무의미함으로 변해가기도 합니다. 치매 환자는 우리의 따스한 보살핌을 정말 잊어버리는 것일까요?
치매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혹시 최근에 보신 영화 있나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예, 그런 내용이군요. 그런데 정말 그 내용이 정확한가요. 우리도 영화나 책을 보고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헷갈리는 적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감명 깊게 읽힌 책을 친구에게 소개할 때, 친구가 묻습니다. "어떤 내용인데?" "음.... 어쨌든 괜찮은 책이야. 한번 꼭 읽어봐."라고 얼버무리기도 하지요. 어떤 책이나 영화를 본 후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느낌은 오래 가슴에 남습니다.
기억의 중추센터는 해마인데,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는 이 해마의 위축이 특징적입니다. 반면에 어떤 것을 본 후 그 느낌, 감정은 주로 뇌의 편도라는 부분에서 작동하지요. 편도는 해마 곁에 있어서 기억과 느낌은 서로 연결된 경우가 많습니다. 충격적이거나 재미있는 것은 오래 기억되는 것도 해마와 편도의 관련성에 의한 것이지요. 치매 환자가 해마의 위축으로 기억 장애가 오더라도 편도가 아직 문제를 안 일으킨다면 그 느낌은 오래 남게 되는 것이지요.
노인 요양시설에 진료를 나가보면 항상 풀이 죽어 있던 할머니가 얼굴이 환해지신 모습을 하고 계십니다. 어제 딸이 찾아왔었다고 합니다. 할머니에게 여쭙습니다. "할머니, 어제 누가 찾아왔었어요?" "아니, 아무도 안 왔어." 그렇게 말씀은 하시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밝습니다.
치매가 진행되면 가족과 함께 한 일도 기억 못 하고, 가족도 점차 잊게 되면서 낙담하게 되지요. 이 낙담이 치매 어르신을 돌보거나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을 소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지요.
하지만 전화 한 통 드리세요. 시간 내서 한번 찾아뵈세요. 기억은 지워져도 그 따뜻한 느낌은 남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