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자신이 중풍에 걸린 것을 상상해 보셨나요?'
한쪽 팔이 마비되어 밥숟가락도 들기 어렵고, 한쪽 다리가 마비되어 혼자 힘으로 제대로 걷기 어려운 상태. 뇌졸중은 환자 자신도, 그를 지켜보는 가족에게도 참 안타까운 질환이지요. 뇌과학자들은 뇌 손상을 받은 환자를 관찰하면서 뇌의 세계를 연구합니다. 환자의 경험을 통해서 뇌가 정신과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간접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지요.
뇌과학자 중에서 본인 자신이 뇌졸중에 걸려 그 상황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달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에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 박사이지요. 어느날 아침 그녀는 심한 두통과 함께 오른 팔다리가 힘이 빠져 중심을 잡기 어렵게 됩니다. 왼쪽 뇌에 이상이 생긴 것이지요. 직장에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전화번호도 기억하기 어려웠지요. 겨우 명함을 찾아 전화를 시도해보지만 그것도 뜻대로 잘 안됩니다. 좌뇌는 글자와 숫자를 인식하기 때문에 그녀는 전화번호를 숫자가 아닌 그림 패턴으로 인식해 명함과 전화기 숫자를 비교하며 겨우 전화를 겁니다. 하지만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직장동료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동료의 목소리나 자신의 말이 "워워 워어"라고 강아지 짖는 소리처럼 들렸다는 것이지요. 좌뇌는 언어 기능을 주로 맡기 때문에 그녀의 망가진 좌뇌는 다른 사람과 언어 교류를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뇌를 들여다보면 뇌는 한 개의 공처럼 되어있지 않지요. 좌우의 뇌가 거의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뇌들보(뇌량, corpus callosum)이라는 불리는 연결부위를 제외하고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두 개의 뇌로 살아간다고도 합니다. 우뇌와 좌뇌이지요. 뇌의 우반구는 좌반구와 관심 분야도 다르고, 일 처리 방식도 반대입니다. 우뇌는 통합적이고 전체적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좌뇌는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일을 처리하지요. 그래서 우뇌를 병렬 처리 프로세서로, 좌뇌를 직렬 처리 프로세서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만약 뇌들보가 없었다면 우리는 우뇌와 좌뇌의 서로 다르게 추구하는 방향에 의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두 뇌반구 사이에 다리가 놓여 있지요. 좌우를 연결하는 뇌들보에는 3억 개의 축삭 섬유가 있습니다. 양측으로 나누어진 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개체로서 살 수 있는 것은 우뇌와 좌뇌가 뇌들보를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적절하게 타협하기 때문이지요. 타협이라 이야기하니 부정적 느낌이 들지만, 우리는 양측의 갈림길에서 평생을 한가지 측면만 고집하고 살기는 어렵지요.
아 참, 뇌졸중에 걸린 테일러 박사 이야기를 하던 중이지요. 다행히 좌측 언어센터를 누르고 있던 핏덩어리를 제거하고 8년이란 재활치료를 받은 후 그녀는 회복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흥미로운 경험을 <긍정의 뇌>라는 책과 TED에서 소개했지요. 그날 아침, 좌뇌가 기능을 못 하자 그녀가 느끼는 세상은 이전과 달라졌습니다. 즉 우뇌가 주로 작용하면서 세상과 나의 경계가 없어지고, 모든 것이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고 하지요. 좌뇌의 분주함이 사라진 곳에서 그녀는 우뇌의 평온감을 느꼈나 봅니다.
오른쪽 뇌는 지금 여기(here & now)로 세상을 봅니다. 도(道)나 일부 종교의 세계에서 인간 세상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지금 여기'라는 화두를 제시합니다. 그 속에서 평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반면에 왼쪽 뇌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보려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너무 파묻혀 우울해지거나, 미래에 집착해 불안에 빠지기도 하지요. 물론 왼쪽 뇌의 기능이 있어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우뇌가 고요한 정적 상태라 이야기한다면, 좌뇌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수다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그것은 잘못 판단했던 거야. 이렇게 해야 했어. 앞으로는 저렇게 하자....' 등등. 하루에도 수없이 울려 퍼지는 머릿속 수다쟁이. 그 지저귐 들은 우리를 반듯하게 나아가게 하기도 하지만, 그 소리 속에 파묻혀 버리게 되면 앞서 말한 우울이나 불안에 파묻히기도 하지요. 우뇌와 좌뇌는 각각의 다른 관점의 두 세계에서 뇌들보란 연결다리를 통해 소통하며 살라고 만들어져 있지요.
문제는 현대 사회가 너무 좌뇌를 강조하고 우선시한다는 데 있지요. 자타를 구분하면서 자기 존재를 명확히 하려 하는 좌뇌. 과거를 분석하고 미래를 기획하는데, 주어진 하루를 다 사용하다 보니, 좌뇌는 쉴 수가 없고 점점 커져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의 하루 중에 우뇌가 작동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그냥 그대로 현재를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자신과 주위의 세계 경계가 없는 일치감을 느껴 본 경험이 언제였나요.
이제 좌뇌도 대뇌의 반만 차지하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란 시간도 반 정도만 좌뇌를 사용하고 나머지 반은 우뇌의 세계에 들어가 보심이 어떨지요. 아하, 이 글을 기획하고 정리하고 고치는 것도 언어중추가 있는 좌뇌라고요. 그렇군요. 저도 오늘 인제 그만 쓰고 우뇌의 세계로 들어가야겠습니다. 평온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