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운이 어느새 사라지고 나면 들판은 아지랑이가 으르렁 거린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책에는 도시에서나 볼 것 같은 혹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여름방학 숙제 들이 나와 있다. 방학이지만 논 투성이 시골에서 할 일이라곤 하루 종일 마룻바닥을 뒹굴거리거나 마루에서 논 쪽으로 뚫린 문으로 들어오는 산들바람에 팔을 위아래로 휘두르며 겨드랑이 땀을 식혀보기도 하고 혹은 벼이삭의 흔들거림을 멍한 눈으로 지켜본다.
심심함은 잔인한 호기심으로 태도를 바꾸기도 하는데 철 없는 무심한 행위 중 하나는 부모님이 논에서 잡아온 우렁이 속에서 발견한 거머리를 뙤약볕에 말려도 보고 볏짚 상단의 가느다란 부분으로 거머리 흡반을 찔러 몸통을 뒤집어 놓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한 행위를 별 생각 없이 저질렀 다. 물론 볏 논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 만으로 종아리에 영락없이 붙어 피를 빨던 그것에 좋은 감정이야 갖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심심함이 만들어 내는 것이 많다. 때마침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땅을 파헤치고 있는 수탉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던져준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일기라도 했는지 비어 있는 밭에 나가 몇 개 남아있는 까막중 나무에서 검은색 열매를 한 움큼 따 먹어보기도 하고 아직 익기를 기다리는 꽈리의 연두색 꽃받침을 벌려 놓기도 한다.
그렇게 해 보아도 시간은 점심시간에 한 참을 못 미쳤다. 라디오 프로에서 어린이 라디오 연속극인 마루치 아라치를 들으려면 또 많은 시간을 할 일 없이 보내야 했다.
그러다 무심결에 친구 집을 찾아 밖에라도 나가면 머리카락 사이사이마다 땀이 삐죽삐죽 솟아오른다. 날카로운 털을 부드러운 척 숨긴 볏잎 사이를 빠르게 지나쳐 그늘이라도 찾을 량이면 수돗물 흔하지 않던 그 시절엔 금방 입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무릎과 맨발의 고무신 안에는 축축한 흙먼지 때가 덕지덕지 떨어질 줄 모른다. 가끔씩 땀이 찬 검정 고무신 안에서 뽁뽁 소리를 내기도 했다. 동네 한가운데 구판장에 가서 색소와 설탕물 천지인 ‘아이스께기’라도 사 오려고 무리하게 달리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벗겨져 버리는 것이 고무신이다.
고무신은 특성상 햇볕에 며칠이라도 노출되면 쉽게 삭기도 하고 신을 신는 아이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워낙 자주 밝아 신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무신 뒤축이 얇아져 쉽게 찢어지거나 마찰로 잘 헤졌다. 좋은 점이라면 값이 싸고 흐르는 물이나 고여 있는 물 웅덩이에 대충 흔들어 닦아도 전혀 꺼릴 것이 없는 가성비 갑인 대중적 신발이었다.
여름방학 즈음이던가 어쩌면 보리타작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데 김장배추나 얼갈이 무를 심기 전까지 집 앞 텃밭은 어머니의 큰 소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만의 놀이터로 단단해져 갔다.
밭고랑 조차 평평해지면 집 텃밭에서 노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대부분이 논인 평야지대에서 아이들이 놀만한 공간은 길 한가운데였을 때도 많았기에 한 뼘의 공간이라도 아이들에게는 정말 소중했다.
그런 공간에서 활시위 당기듯 검지를 구부렸다 펼쳐 손가락의 힘으로 사금파리를 날려 땅을 넓혀가는 아이들의 놀이는 어른들의 영토싸움과 같았다.
더구나 굴뚝이라도 곁에 있으면 금상첨화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을 갖기 쉽고, 숨바꼭질하는데도 제격인 멀티플 렉스 공간이기에 말이다. 그런 곳이 내가 아는 것으론 굴뚝 옆 빈 채소밭이지 않을까 싶다.
어디 선가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양은 냄비나 구멍 난 솥 때워요!!!!”
뒷곁 마당에 펼쳐놓은 왕골 돗자리에 누워 어른용 라디오 방송을 듣다 지쳐 새로운 것을 찾는 이에게는 정말 반갑고 흥미를 유발하는 이방인의 목소리이다.
벌써 굴뚝 옆 빈 채소밭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그 한가운데엔 낯선 이가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다.
이동식 화로인 듯한 것에 풍구질을 하고 조그마한 종지에 납을 녹이고 있는 낯선 이의 주변엔 찌그러지고 구멍 난 양은 냄비와 뒤축이 닳고 찢어진 신발들이 줄지어 있다.
지금도 선명한 것은 박카스 병에 담긴 흰색의 본드 용액이다. 가죽이나 자전거 튜브를 가위로 적당히 잘라 사포로 문지르고 본드를 발라 찢어진 고무신에 밀착시키면 앞으로 서너 달은 넘길 것 같다.
무슨 착용감을 논하고 발바닥의 쿠션감을 논할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구멍 난 무쇠솥이 걱정인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더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