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함

by 이상훈

아무 한 일이 없이 하루를 보낸 후의 느낌은 무엇이 그렇게 허무해서인지 그렇게 보내버린 자신에 대하여 많은 자책을 할 때가 많다.

어릴 적에 배웠던 촌음을 아껴 써라를 실천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그렇게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각성 같은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한다.


노는 것도 연습이고 휴식이 있어야 창의적인 사고를 더 많이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나의 몸이 농경사회에 자라났고 익숙해서 였는지 지적능력의 확장보다는 몸을 놀리는 노동만이 최고의 미덕이다라는 관념이 잠재의식 속에 뿌리 박혀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의식의 흐름이나 습관적인 행동양식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 것 같다. 또 어쩌면은 스스로를 극한 상황으로 밀어 넣는 것이 너무 뻔하고 지극히 불행한 연결고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직감하는 경우도 많다.



인간의 뇌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이 신경전달물질 전달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단다.

오늘 그 도파민이라는 신경물질의 전달에 문제가 생겼나 보다. 한마디 한마디 들려오는 것들이 비비 꼬이는 등 예사롭지 않다.


박목월 시인의 “산이 날 에워싸고”의 구절을 보면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시인은 알았을까?

사람의 목숨이 정말 그믐달처럼 사위어 가는 줄을,

그래서 시인은 그런 삶을 인식했을 때에 삶의 습관이나 의식의 흐름을 어떻게 제어해 나갔을 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런데 별반 나의 의식 흐름과 다르지 않다.

더구나 시인은 나름 대학교수이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누릴 수 없었던 많은 특권 같은 것을 누리고 살았을 텐데 말이다.


유명한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시를 쓴 “유안진”을. 문단에 등단시킨 장본인인 박목월 시인.

시인은 정작 본인은 유안진 시인이 시 몇 편 쓰고 시 쓰는 일을 중단할까 염려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입장이 뭐가 될까 하고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나고 보면 걱정했다는 내용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소심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네 라고 생각이 든다. 시인은 가난해서 개구멍으로 아들에게 서커스 구경을 시켜주기도 하고 아들로부터 “힘드시죠”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참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는 데로 의식이 바뀌는 그대로 그렇게 살아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 찬시를 남겼고 육영수 여사의 시 선생이기도 했다.

단순하게 엄청난 것을 바랄 필요 없는 그냥 시인일 뿐이다.


청빈 낙도의 삶을 가지려고 했는데 그것이 잘 안되었던 것일까?


그믐달처럼 사라질 목숨인데도 말이다.


대통령 찬시를 쓴 것도 물론 이유가 있겠고, 가난하게 산 것도 이유가 있었겠지. 우리는 다만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할 뿐이고...


오늘은 도파민에 문제가 보인 날이다. 괜히 동네 밴드에 올라온 박목월 시인의 “산이 날 둘러싸고”가 눈에 띄는 바람에 엉뚱한 분에게 화를 내뱉는 꼴이 됐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말이다.



이왕 이럴 거면 내가 한참 청년일 적에 즐겨 읽었던 그 시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다시 한번 읽어보자


"지란 지교를 꿈꾸며"


ㅡ 유 안 진 ㅡ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조금 나더래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예기를 주고받고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아내나 남편이나 제 형제들과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며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수 있으면 좋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하게 맞장구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 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를 원하지 않는다


많음 속에 한두 사람과

진실로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많은 것을 구경했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억에 감회로 남은 것이 거의 없다


내가 만약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길 자산이 되었을 것을


우정이라 하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내가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정직하게 살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자리에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거나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 속 침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고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야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지혜롭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닌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응원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할 것이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고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 지고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는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고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보다 품위 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자 서로를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으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의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고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고 해도

그의 숙녀 됨이나

그의 신사 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 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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