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먹고 올 거야?”
“염색 끝나면 종운 엄마 만나서 책도 좀 전달하고 커피도 한잔할 거야.”
“그래, 우리 점심은 어떡하지”
“...”
“그럼 지난번 김밥 재료 남은 것으로 딸내미하고 김밥 싸서 라면으로 점심 먹을 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곡선도로 위로 설치된 신호등 색이 노란색으로 바뀌어 버린다.
라디오에선 임재범의 ‘너를 위해’가 흐른다.
잠시 후 미용실 간판 앞에 차를 세운다. 좋은 일인지 어떤 일인지 도로 위에 차가 없다. 아무도 오지 않는 도로 위에 켜진 파란 신호등을 뒤로하고 핸들을 돌렸다.
아파트 주차장을 건너 몇 백 여 미터 길을 건너 내려오면 식자재마트다.
단무지, 우엉, 게맛살 등 김밥 재료를 고르고 맛이 있어 보이는 털 없는 복숭아도 한 팩 골라 포장지 대신 지역 쓰레기봉투에 담아 왔다.
프라이팬에 유채 씨 오일을 두르고 계란지단을 부쳐내고, 다음엔 당근을 채칼로 채를 내어 소금을 뿌리고 프라이팬에 살짝 볶았다.
이제 김밥용으로 만든 밥은 아니지만 아침에 한 밥에 들기름과 소금 식초를 약간 넣어 섞어 간을 맞춰 놓았다. 이번엔 참치 김밥도 조금 준비하기로 했다. 캔을 따고 참치를 쏟아 기름을 꼭 짜내고 거기에 고추 다진 것과 마요네즈를 섞어 준 다음 파란색 고추를 갈라 속을 파내고 고추 안에 채워 넣었다.
지난주에 사다 놓은 게 어디 있더라!
냉장고 안 어디에도 감감무소식이다. 분명히 지난주에 김밥용 김을 두 봉지 구매해서 놨는데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우리 집이 무척 커 보인다.
베란다 보물창고에도 가보고 김치냉장고랑 보조 냉장고를 기웃거려 봐도
김가루 비슷한 것도 안 보인다.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여름철 김은 대부분 냉동실에 보관하던데 이렇게 찾지 못할 줄을 마트에서는 생각도 못해 봤다. 오히려 김밥용 밥을 다시 해 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화를 내며 아이 엄마에게 전화하기도 뭐해서 톡을 남긴다.
잠시 후 자기 방에 있던 딸아이가 무슨 일이냐 듯한 표정이다.
아이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서
그러게 너에게 화를 낸 게 아니니까 얼른 학원이나 다녀와라 했더니
여전히 뚱한 표정이고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벨이 울린다.
“지난번 밑에 층 언니 올라오셔서 김밥 해서 먹었는데”
“ㅜㅜ”
“아니 그럼 차 타고 갈 때 내가 김밥 준비해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는데 왜 말하지 않았어”
“그 김 말고 그냥 곱창 김으로 하면 안 돼”
“그 김이 김밥용 김과 같니”
“마트에도 다녀왔는데 말을 좀 해주지!!!”
집의 크기도
물건의 크기도
말의 중의적인 이해도
모두가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린 듯하다.
행동이나 말이 단순히 사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더라도, 정이 없으면 의미가 퇴색된다. 정이 있더라도 표현되지 않으면 알아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말로야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뜻만 그러하다면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