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와 생솔가지

by 이상훈


요즘 블로그에 무턱대고 정보를 올리느라 정말 브런치 돌볼시간이 없다. 자주 글을 써야 되는데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내일 내일 하다 보면 어느새 한 달이 훌쩍이다.


예전의 부엌은 부엌 안에 찬장과 불쏘시개를 놓아두는 헛간이 필수적이었다. 요리에 필요한 장을 가져오기 편하도록 부엌 뒷문을 열면 바로 장광도 있었다. 장광에는 각종 간장과 고추장 그리고 된장을 담고 있는 크기와 모양이 각양각색인 단지가 널찍하고 평평한 돌받침대 위에 매끈하고 반질거리는 모습으로 놓여 있다. 모두가 살림하는 어머님들의 보물과 같은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 부엌에서 장광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놓고 보면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빗물에 토방이 젖기도 하지만 그 소리가 너무 좋아 장광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놓고 앉은뱅이 나무방석에 앉아 문밖을 향해 귀를 쫑긋해 본다. 그러다가 비가 그친 후 구름이 물러난 자리에 파란색의 맑은 하늘이 내 눈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도 상큼한 기억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외가나 이모 댁에 가보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탱자나무나 편백나무로 둘러싸인 울타리를 보는 것도 좋았다. 장광 한편에는 누구네 집이던지 앵두나무나 포도나무 한 두 그루 있었다. 굴뚝 옆으로는 석축용 돌로 배수로가 설치되어 있어 물 빠짐이 좋도록 해 놓았다.


대부분의 집들이 북쪽으로 장광을 두기도 했지만 외가의 경우에는 동쪽으로 장광을 두었다. 장광에는 높게 벽돌로 쌓아 올린 굴뚝이 있었고 굴뚝 뒤쪽과 같이 그늘 진 곳이 많은 장광은 배수로를 중심으로 파란 이끼들이 한가득 피어있기도 했다.

물론 어릴 적 기억이라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비 온 다음 기온이 떨어지거나 비가 내리는 날인 듯하다.


30도를 넘기는 무더위 속에 불을 지피고 요리를 한다는 것은 요즘 같으면 참 끔찍한 일이기도 하고 물론 당시에도 여름손님은 호랑이 보다 무섭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여름은 음식 준비와 옷차림, 목욕 등의 문제로 타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방학을 맞으면 냇가를 두고 있는 외가나 이모댁을 방문했는데 그런 시기에 다행히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나마 보는 이는 시각적으로 숨 막힘이 덜한 그런 날 중 하나일 것이다.

방학이 시작되는 7월

장마와 태풍이 끝없이 이어지며 습도가 장난이 아니게 높던 때. 또 한차례 소낙비라도 퍼부어대는 날이면 아궁이에 솔가지로 불을 넣어 습기로 눅눅했던 집안 전체를 뽀송뽀송하게 할 필요가 있었을 듯싶다. 빨래도 말릴 수 있고, 축축해진 마룻바닥도 왠지 소독을 받은 듯 건강한 느낌이 들 것 같다.


당시에도 장마철 보다 태풍에 의해서 내리는 비가 더 많았다. 이 때는 고추 수확철이기도 해서 김장용 고추를 집집마다 마련하느라고 분주했다. 가을하늘 고추잠자리가 날던 그런 날씨에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는 것이 일반적인 그림인데 사정에 따라서는 7월 말 정도부터 고추를 사다 말리는 가정도 많았다. 시장에서 사 온 물고추는 빠르게 말려야 부패를 막을 수 있기에 비가 오는 날이면 방바닥에 고르게 펴서 말렸다. 그런 때면 정말 매운 고추향이 방안 가득 채워졌다. 그러면 일정시간 환기도 시킬 겸 창문을 열어 놓는데 때 마침 먹구름이 지나 빼꼼히 드러난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그런 날에 물리적으로 좀 거리는 있지만 옥수수수염에 달려있는 물방울이 맑게 보이기도 했다.

또다시 먹구름이 몰려들고 비가 흩뿌리기 시작하면 지붕에 떨어진 빗물이 추녀 끝에 모여 떨어지고 추녀에서 떨어지고 있는 빗물을 손으로 받아 흩뿌리며 장난을 하다가 젖은 옷을 말릴 겸 방바닥에 누워 소년중앙이나 어깨동무등의 그 시절 만화책을 뒤적여 보기도 한다.

비가 내리는 날 비에 젖거나 덜 마른 생솔가지는 특히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그럴 때면 가늘게 팬 마른 장작이나 오래된 교과서를 찢어 넣어 화력을 높이고 생솔가지를 넣으면 관솔이 많은 부분에서 나는 따닥따닥 요란한 소리로 응답을 했다.

그리고 불이 피어올라 스스로 화력을 더하면서 생솔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보다 더 강한 향기를 잊을 수 없다. 왠지 자연의 냄새 같고 무척이나 건강한 느낌의 향기였다.

죽은 소나무 가지나 가지치기하면서 생긴 생솔가지는 대부분 산에서 며칠 전에 가져다 놓은 것을 써야 화력이 좋은데 비 오는 그날의 불쏘시개는 생솔가지였다. 그 생솔가지가 타면서 내는 향기는 송진이 연소되는 냄새를 가지고 있는데 장마철의 꿉꿉한 냄새와 가라앉은 마음도 푸근히 감싸주는 듯한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여름철 땔감이 떨어져 젖은 생솔가지를 이용해 요리를 하고 방안을 말리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편 화력이 본 궤도에 올라오고 잠시 후 외숙모나 이모가 부추나 파로 전을 부쳐 오면 이종사촌들과 옹기종기 쟁반 주변에 앉아 맨다리에 간장을 떨어뜨리며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비가 그치면 외삼촌이나 나이가 많은 이종사촌 형들은 집 근처의 야산에 나아가 염소 꼴을 베어오는데 가끔 칡덩굴이 한가득일 때도 있었다. 축축한 꼴을 염소는 개의치 않고 잘 먹었다. 내가 그렇게 먹이를 주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둥글게 말린 뿔을 들이대던 그 흑염소의 눈빛이 생생하다.

가끔 비가 내려 기온이 내려간 날 철로 된 드럼통을 잘라 만든 화구에 생솔가지를 넣고 그 불향을 느끼고 싶거나 솥뚜껑을 올려놓고 전이라도 붙이고 싶은 충동도 있지만 그 시절의 느낌은 아니다. 그 시절의 그 아이들도 없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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