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어둠을 보듬을 때 우린

by 이상훈

“아들과 딸”이라는 예전 TV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 김희애의 아버지로 나오는 백일섭이 술을 한잔 걸치고 돌아오는 길에 “홍도야 우지 마라. 아!! 글씨 오빠가 있다.”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귀가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저렇게 기분 좋게 읍내 탁주집에 한 잔 걸치고 집에 돌아오는 낭만은 아마 아버지만 가질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자식뿐 아니라 특히 집에 계신 아주머니들은 아버지 혹은 남편의 음주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사회 지배층이 남자들인 관계로 부당한 것은 감춰지거나 감래 해야 하는 것들로 치부되었다. 그래도 TV 드라마에 나오는 백일섭 배우 정도의 술버릇은 참 양반이다. 기분 좋게 마시면 이렇게 참 좋은 것을 우리는 대부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마시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부수고 거리에 퍼질러 앉아 울기도 한다.

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발끝에 걸리는 것들을 차거나 집에 돌아와 물건을 부수고 부부싸움을 하고 하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이유도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술 마실 때의 감정이 많이 좌우한다. 아니면 세상이 자기를 몰라주고 자기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 같다.라는 생각에서도 자주 연유한다.

그러면서도 술을 끊지 못한다. 몹쓸 병에라도 걸려 마실 수 없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전혀 술을 끊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누구에도 술을 끊으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많이 들 권하는 편이다. 지금은 덜하지만 말이다.


술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있다. 빛이나 어둠과 같이 완전히 좋고 완전히 나쁜 것과는 좀 다르다. 적당히는 피로를 풀어주고 관계를 돈돈하게 해주는 촉매제이다. 그러나 과하면 건강을 해치고 주사를 불러와 관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주사를 가진 이도 빛과 어둠이 가진 속성으로 어둠을 멀리하라고 하는 것과는 달리 자식들에게 술을 마시지 마라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어둠보다 어쩌면 술이 더 나쁜 영향을 미치는데 말이다. 빛과 어둠은 그냥 상징적인 것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 하는 이도 있을 것이지만 술이 그렇게 나쁘다면 본인도 끊고 자식들에게도 마시지 못하도록 하는 게 당연지사이다. 하여튼 세상살이에서 여타의 안 좋은 것보다는 술에 대해 사회 모두가 상당히 관대하다.

검사양반들도 술자리에서 온갖 추태를 부렸다는 뉴스도 간혹 볼 수 있고 의사들도 그렇다고 하고 판사들도 술로 인한 범죄행위에 관대한 판결을 내려왔다는 점이 그러한 상황을 입증해 준다.

각설하고 어린 시절 이웃집에 살던 아저씨는 아주머니가 자주 바뀌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모를 것 같은데 매년 다른 아주머니가 안방을 차지하고 부엌에서 요리를 했다. 젊은 남자애들은 이런 상황을 좋겠다 하겠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려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면이 없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술만 마시면 대성통곡을 하고 시골을 벗어나고 싶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담배를 태운다. 술을 안 마실 때는 물론 그렇게 얌전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도 술을 팔아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아이들이 술집에 가서 술을 받아 오는 일이 흔했다. 이 아주머니도 남편 몰래 동네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구판장에서 막걸리 한통을 사 오게 하는 일이 잦았다. 이 일이 빈번해지면서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 구설수에 올랐다. 주기적으로 술을 시켜 마시는 것은 아마도 전직이 술과 관련된 일이고 누구 집에 재취로 들어왔다는 것도 그런 일관 연관된 직종에서 일한 게 아닌가 싶다는 둥 말이다.

무료한 시골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쎄가 빠지게 일만 하는 농투성이들과 달리 매일 늦게 잠을 자고 향응을 즐기고 했던 삶으로서는 아마 그 어려움을 가늠하기 쉽지 않았겠다.


아버지도 술 때문에 일찍 돌아가셨지만 아버지 친구 분의 운명도 아이러니했다. 시골의 농사용 수로는 겨울에는 물이 거의 없어 걸어 다녀도 될 정도였는데 수로 위를 지나는 다리가 많지 않아 필요할 경우에는 어느 때나 길에서 내려와 수로를 걷다가 다시 옆 길 위로 올라 목적지로 향하는 일도 많았다.

어느 해 겨울밤인가 싶다. 느티나무가 줄기를 길게 늘어트리고 있던 물 없는 수로에서 사망하셨다. 아버지 친구인 그 아저씨는 술을 드시고 집으로 돌아오다 얼굴을 수로바닥에 향한 채 엎어져 돌아가셨다. 술기운에 동사를 하신 것인지 심장마비인지 아니면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는다는 이야기와 같이 약간 고여 있는 빗물에 얼굴을 박고 돌아가셨다는 것인지 하여튼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아이들도 착하고 그 양반 얼마나 호인이야 라는 말을 듣던 아버지의 둘도 없는 단짝이었는데 말이다.


천주교에서 빛은 선한 것, 착한 영, 참 거룩한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어둠이고 어둠의 세력이다. 그래서 빛은 자신을 밝혀 어둠을 몰아내고 정의를 실현한다. 새벽녘 동이 트기 시작하면 어둠의 세력은 물러나고 만물이 생동하는 낮이 찾아온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로 보면 모두가 빛을 사랑하고 빛 속에서 사는 것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길일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어둠은 심연과 같은 깊은 물이고 쉼이고 잉태이고 씨앗이다. 빛은 성장이고 각각의 것들을 드러내 선명하게 해주는 것이다. 어둠만 있다면 잉태하여 태어날 수 없고 빛만 있다면 조열 하여 말라죽는다.

빛과 어둠은 서로 일정하게 나누어져야 한다.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는 현상 때문에 어둠은 빛이 싫을 것이라는 관념이 생겨난 듯하다. 그런데 정작 어둠이 없으면 모든 자연물과 인간은 쉼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빛과 어둠을 대립구도로 만들면 자연은 참 힘이 든다. 서로 보완관계인데 말이다.


사람들은 빛이 활동적이고 드러내는 것이기에 좋아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편안하게 쉬게 해 주고 보듬어 주는 어둠은 좋아하지 않도록 강요하면서 말이다.

오히려 문제가 많은 술은 서로가 권하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무엇이 중도이고 무엇이 해악인가를 우리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드러나고 명확하여 무지한 이들을 잘 설득할 수 있거나 잘 관리할 수 있는 쪽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 깊이 있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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