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보다 넓은 가방 속

by 이상훈

오늘 아침도 분주하다.

안경 벗어 놓은 곳을 기억하지 못하고 찾지 못했다.

바쁜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어야 할 시간에 이 방 저 방 순례를 하기도 하고 화장실 유리장 밑을 살피기도 한다.

결국은 고양이 용변을 치우기 위해 베란다 책꽂이 위에 벗어 놓았던 것을 겨우 찾았으니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날은 가방 안에 넣었다고 생각한 자동차 키를 찾지 못했다. 가방 안에 손을 넣고 몇 십 초를 이리저리 놀려봐도 차키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결국은 가방 안의 물건을 모두 끄집어낸 끝에 결국 주머니 안에서 차키를 찾았다. 무안해진 마음 가방 안이 태평양보다 넓다 하고 집을 나선다.


60이 내일모레인데 언제나 철이 들까?

예전 어르신들을 기억해 보면 참 괜찮아 보였는데 내가 그 나이에 다다라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지금과 같은 행동양식과 마음으로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평균 수명이 40세 정도였다. 기록에 따르면 대한 말 일제 강점기에는 평균 수명이 24세 정도로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평균 수명 40세 시대의 경우에는 옛 고전의 많은 읽을 거리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20세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마음가짐과 행동양식이 깊고 예의 바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익숙하게 해 왔던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삶의 깊이가 다르고 세상을 알며,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아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세상을 모른다.

나에게 완전한 성숙이라는 것은 관념 속에만 머물다 사라지는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교과서에만 나오는 피상적인 것이다. 내 것인 적이 당연히 없었고 내 것이 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나의 행동 양식으로 갖춰질 요량도 없고 더구나 행동이나 말과는 다른 온전한 표정으로의 온화한 감성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인가에 항상 쫓기기만 하고 만족하지도 못한다. 또한 부담스럽게 참여한 것들에 대해서도 마음 놓고 즐기지도 못하고 지나면 후회를 하는 것이 많다. 어차피 이 시간 또한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면 열심히 그 시간을 그 시간답게 써야 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말이다.


설사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의 걱정을 조금 더 붙들어 놓는다고 사태가 진지하게 해결되거나 하지 않기에 지금 이 공간 안에 머무는 것들에 대해 최선을 다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모든 것은 연습량과 비례관계에 있다. 열정적이지 않은 삶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기에 삶의 대부분이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맹렬하게 열정을 쏟는데 익숙하지 않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나오는 시구처럼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에 깊은 공감을 한다.


많은 것들이 생각 속에만 머물다 사라진다. 또한 순간순간마다 달라지는 생각의 기준들이다. 특정한 것에 접촉이 많았던 날과 접촉이 덜 한 날의 기준이 달라진다.


갈수록 편협해지고 인색해지는 마음은 도대체 어느 순간이 되어서야 30센티미터도 안 되는 가방 안의 그것처럼 넓어질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나의 가방은 태평양 보다 넓었었다.


이제와 겨우 나는 내가 딛고 서있는 지점에서 밖에 볼 수 없다. 겨우 그 지점에서의 관념에 머물며 집착을 하고 분노를 한다.

누구도 찾지 못하는 가방 속의 그것들 객관적이지도 않고 남들은 모르는 일임에도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 분노를 하는가!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칭찬하는 말과 지적하는 말 딱 두 가지로만 들린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유형인가 싶다.

이제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어느 날은

내 차선의 차들만 천천히 달리는 것 같고 내 차 앞에만 끼어드는 것 같고 나만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모두가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마음인 것 같다.

경직되지 않은 여유와 배려를 가지고 싶다.

조그마한 가방조차 제대로 탐색하려 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좌절하는 그런 시절은 절대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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