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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스메

by 이상훈

대학 때 자취하는 같은 학교 선배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시간이 날 때마다 기타를 치셨다. 뭐라고 해야 하나 생김새부터 "나 착함"그렇게 쓰여 있는 듯 행동과 말에서 불편함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선배의 방에서 처음과 비슷한 술 경험을 했다.

그때 "깐스메"라고 불렸던 꽁치 통조림 통을 통째로 끓였는데 그 꽁치 통조림에 곁들인 그 한잔이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안주 맛으로 소주를 마셨고, 소주는 거드는 정도였다.


그 당시 자취하던 돈 없는 학생들이 시국을 논하며 삼삼오오 자취방에서 밤새도록 술안주로 먹었던 것이 새우깡인 것에 비하면 깐스메는 고급 안주였고, 상비 식품이기도 했다.



예전 초등학생시절 겨울방학 때 동네 잡화점이자 식료품 가게 역할을 했던 구판장에 갈 일이 있어 들어가 보면 어른들이 농한기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연탄난로 위에서 안주를 끓여서 술을 마시는 것을 왕왕 보았다. 얼큰한 냄새가 진동하는 구판장안과 술 한배가 벌써 돌았는지 거세진 입담으로 시끌벅적한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의 술안주로 이용됐던 것이 아마도 꽁치 통조림이었을 것이다. 육간집은 거기도 멀었고, 구판장과 육간집 사이의 관계도 그렇게 좋은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고로 구판장에서 술안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고등어나 꽁치 통조림에 김치를 적당히 넣어 끓이는 조금 더 넣는다면 두부 반모정도를 추가한 꽁치김치찌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거기 계셨던 아저씨 뻘 되는 사람들은 지금 세상에 없지 싶다.


술의 브랜드는 빨간 두꺼비나 금복주 등의 4홉들이 술병이고 알코올 함량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술은 나에게 친화력을 강화시켜 주는 좋은 촉매제이기도 했다. 과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어울림을 주었던 것도 소주였다. 그리고 교회 학생들과 순대볶음을 안주로 담론을 주고받았던 촉매제도 소주였다. 물론 소주는 거들기만 했을 뿐 여전히 나에게는 안주가 우선이었다. 지금이야 안주가 나오지 않아도 한잔을 들이켜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지만 예전의 나는 술 한 들이키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 2학년인가 무렵 국회의원에 출마한 형님을 도와달라며 대학동기가 서까래가 드러난 허름한 음식점으로 부른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안주는 기억나지 않는다. 불판에 굽는 고기도 아니었고, 무슨 찌개종류였지 싶다. 초대한 친구는 등치가 나 보다 두 배는 더 거대해서인지 술을 무척 잘 마셨다는 기억이다. 다른 과 여자 애들도 있었는데 얼마나 많은 술을 먹었던지 일어나 보니 여인숙 방에 다른 친구와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방안은 온통 쉰네가 가득해 방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느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때 알았다. 술을 마시는 양 못지않게 술을 마시는 속도가 취함의 정도를 극명하게 달리 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후로도 그렇게 한두 번을 더 마신 경험이 있고 회사에 입사해서도 한차례 더 있었다.


오늘 기본적으로 "깐스메"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술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나에게 술에 관한 에피소드를 더 들춰보면 아마도 대학시절에 다녔던 교회의 친구들과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어묵이며, 순대 등의 안주를 놓고 사랑타령을 했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어린 시절 나는 보통 줄곧 밖에 나가 노는 것도 싫어하는 등 성향상 활동적인 편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책이나 보던 것으로 시간을 보낸 편이다. 그리고 아는 친구들이란 그저 내 사정권 안에 들어와 눈에 자주 띄어야 했다. 그렇게 친화력이 많이 없었던 나는 다른 이들과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 번 친해지면 꾸준한 정을 주는 스타일이어서 대부분의 지인이 이 범주에서 형성되었다.



다시 대학시절 자취방으로 돌아가 보면 어쨌든 둘이 방바닥에 철퍼덕 앉아 2홉들이 소주 한 병을 마시면 적당한 취기를 느끼기에 아주 좋았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다음 벽에 걸어두었던 기타를 쳤는데 그 당시 유행했던 포켓형 대중가요집을 펼쳐 놓고 한곡 뽑아 보는 것도 낙이었다.

아무런 낙이 없던 대학시절 어떤 아이들은 동아리 방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지만 나는 그도 아닌 포크송 한두 곡과 알코올 기운으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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