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다음
떨어지는 처마의 낙수 소리가
나는 좋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수에는
일정하고 길게 늘어뜨려지는
편안한 리듬이 있어
나는 좋다
맹렬했던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기 전
살짝 소름 돋는
선선한 바람이
나는 좋다
비 오는 날 아침엔
온돌바닥의
따스한 온기를
맘껏 즐길 수 있는
평안함이 있어
나는 좋다
비가 그친 다음
빗물이 담긴 그릇에
사뿐히 던져진
낙수 방울처럼
맑게 울려오는
그 소리는
베인 상처가 아물듯
온몸의 휴식처럼
달콤하다.
그때는 알았을까?
이 평안이
아침 녁 아버지께서
지피신 군불과
땅 위를 맨 처음
두드린 빗방울로
시작된 것임을...
맨 처음
땅 위에 툭 던져져
흙먼지 휘날리며
맹렬히 울부짖는
빗소리에는
들켜버린 상처가
소독용 알코올에서
느끼는 처절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