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디테일

by 이상훈

어머니는 대가 세다. 아니 같은 집에 사는 여자분들이 모두 대가 세다. 대가 세다는 것은 다른 말로 고집이 세다는 뜻인데, 사전적 의미로는 자기주장이나 뜻을 굽힘 없이 관철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렸을 적 기억을 되살려 보면 내 어머니는 집으로 찾아온 과일 장수의 공짜 맛보기 상품도 거절하셨다. 내가 옆에서 얼마나 먹고 싶어 했는지 아시면서 말이다. 아마 지금의 우리 딸 같이 맛보고 싶어 했을 듯하다. 그 간절한 눈빛을 보면 참 안 사 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사랑이 작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머니는 특별했다. 요즘이야 연세가 드셔서 가족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것이 걱정이시지만 어렸을 적 나에게 어머니는 온화한 모습이 아니셨다. 외가의 가풍이 혹은 DAN가 원인일 수도 있겠다. 외가의 대부분이 흥겨움과는 거리가 있다. 근엄하고 가부장적 권위가 요소요소에 묻어 나온다. 한동안 유행한 모국어의 뜻 같이 말이다.


세상을 굵은 선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세상에 대하여 옳다 그르다. 남의 것은 공짜로도 받지 않는다. 남에게 부탁하지도 않는다. 남에게 빌리지도 않는다. 이런 정도의 범주만을 정해놓고 얼굴 표정도 요정도 수준에서만 움직이는 듯하다. 얼굴 표정의 변화도 많지 않으시고 웃는 얼굴을 뵌 기억도 없다.

세상의 디테일한 움직임을 자기가 정한 프레임에 맞추어 넣으려면 본인도 머리가 아프지만 실제 머리가 아픈 사람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다. 웃음으로 승화시켜야 스트레스도 덜 한데 그에 대한 디테일한 연습을 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인간을 판단하는 혹은 호감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디테일한 얼굴색 태도 인성 습관 말씨 등이다. 이들 요소들은 관계를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후회 없는 마무리를 갖게 한다.

좋은 표정이나 태도의 디테일한 노출 시기는 가정이나 제도권 내에서 좋은 것을 습득하고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자주 좋은 습관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세상사에서 발생하는 많은 급작스럽고 우연한 일들을 당하면 그동안 가장 많이 보아왔지만 감춰졌던 것들로 언어가 표현되고 얼굴색이 나타난다.


세상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정의 내릴 수도 없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다. 또 보여지는 것과 그 안에 감춰져 있는 것을 다 알기에는 우리의 능력이 한 참 모자라기도 한다. 그것이 공짜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일도 많고 옳은 일인지 아닌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우리가 아는 것으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상황이 무궁무진하게 존재한다.


특히 어머니 세대의 경우 세상살이의 디테일한 상황도 경험이 적고 디테일한 태도에 대한 연습도 많지 않았다. 즐거운 일들이 많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이라고 엄청난 즐거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로 인해 요즘에는 필수 불가결한 웃음이나 유머가 그다지 큰 대우를 받지 못했다. 물론 일제 식민지배, 한국전쟁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도 영향이 있다. 근엄해야 어른스럽고 진지해야 올바른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사회적 풍토도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민족의 해학적 특성을 이야기 하지만 역으로 보면 해학이 일반적이지 못했기에 의도적으로 해학을 강조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얼굴 모습을 보자. 우리가 각자 짓는 얼굴의 표정은 나를 포함하여 나 이외의 타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직되어 있지 않은 보기 좋은 얼굴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갖게 하고 왠지 많은 일들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한다. 또한 많은 이가 이러한 느낌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이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디테일한 웃음코드를 찾아낸다. 우리가 버티어 낼 수 있는 것은 근엄함으로 인하지 않는다. 웃음으로 승화시킨다는 말도 있는데 슬픔을 어색하지 않게 절망을 어색하지 않게 드러내는 방법이다.


웃음도 연습이다. 연습을 통해서 얼굴 근육을 잘 써야 부자연스럽지 않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연세가 드신 어른들의 얼굴을 보면 앙다문 입술과 입술 좌우 끝단면 아래로 처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과 중력에 따른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이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가 그동안 진지하고 근엄하게 대해왔던 얼굴 표정을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바꾸는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더 큰 원인이다.


다양한 세상살이에 대한 표현을 몇 가지 범주 안에 넣으려 하지 말고 다양한 모습으로 밖으로 드러내고 디테일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가져주자.
얼굴은 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내 몸이 내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하지만 내 얼굴을 내가 보는 시간은 많지 않다. 거울이 생겨나서 하루 몇 번 보게 되는 것이 나의 얼굴이다. 어찌보면 내 얼굴은 타인을 위한 것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간은 매일 150가지의 선택을 하고 그 가운데 30번 정도 신중한 선택을 하며 올바른 판단은 5번 정도라고 한다. 하루의 판단 중 올바른 판단이 3%가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고 나머지 97%가 잘못된 판단이라는 말이다. 선택도 올바르지 못한데다가 얼굴도 세상을 다 산 표정이다.

근엄함으로 97%의 오류 투성이 판단을 하면서 굳이 타인의 것인 얼굴을 망쳐놓을 필요가 있을까? 타인을 위한 내가 가진 얼굴 내 영혼의 저장소를 좀 더 아름답게 가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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