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엔 무언가가 담겨 있다. 어느 날은 슬픔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 얼굴은 가면이기도 하고 본성이기도 했다. 신체 중에 인간의 정신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보아도 보아도 속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담긴 '포커페이스'라는 명칭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이는 자신의 정신세계나 자신의 품격을 얼굴에 드러내 놓고 산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의 그릇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영혼의 그릇. 발가 벗겨진 느낌이다. 영혼이 발가 벗겨졌다면 육체가 발가 벗겨진 것보다 더 창피스러움을 느껴야 할 텐 정작 창피함을 몰랐던 세월이 더 많다.
우린 자주 우리가 가진 얼굴을 통해 자신의 한 없이 낮아진 존재감을 거침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지구 상의 많은 포유류 중 얼굴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동물은 거의 없다. 인간만이 얼굴을 통해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있다. 어떻게 얼굴이 최강의 감정 표현 도구로 까지 진화될 수 있었을까? 그리스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사람에게만 얼굴이라는 단어를 쓰고 기타 동물들에게는 면상이라는 단어를 써서 사람의 그것과 구별 짓는다. 동물과는 아주 많이 다른 영혼의 그릇이기에 말이다.
얼굴 근육 수가 80개 넘는 것도 얼굴 표정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태초부터 만들었던 것 같다. 동물들이 의사전달을 위해 사용하는 단어가 80개에 미치지 못할 텐데 얼굴에만 80개의 근육이 있다 함은 단순하게 생각해 보아도 무표정이나 슬픔으로 국한해서만 사용하기엔 무척 아쉬운 구석이 많다.
또 얼굴에는 자기가 살아온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50세가 넘으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다.
유전학자이고 진화 생물학자인 애덤 윌킨스가 지은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를 보면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들은 집단의 안정성 유지를 위하여 좀 더 사교적인 사람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다양하고 섬세하게 그러면서도 영혼을 담은 감성을 드러내는 것이 얼굴 근육 수에 맞는 얼굴의 역할인 것이다.
다양하고 고차원적이어야 할 얼굴 표정이 현대에 들어 점 점 단순화해 간다는 느낌이 들까?
복잡한 삶에 대한 피로도가 쌓여서 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지수가 반드시 선진국에서 높게 나타나지 않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 피로 물질은 간혹 반항심을 낳기도 하고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 놓으려는 성향으로 이어지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얼굴을 통해 어떤 특정한 사람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어떤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 왔는지를 더듬어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 얼굴은 타인을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