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 사이
학교 수업이 끝났다. 오후 한 시, 어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겨울과 봄 사이 딱 요맘때 불어오는 차가움과 시원함 사이의 바람은 가뜩이나 파란 캘리포니아 하늘을 더 총명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학교 주차장에 이르러 주차된 내 차 지붕을 바라본다. 그 동안 쌓여있던 먼지가 지금 내 마음을 보는 듯하다. 왜 내 마음은 늘 아무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듯 늘 공허하고 먼지가 쌓여있을까, 정답을 찾으려 수 년간 고심해왔지만 결론은 윤곽도 잡히지 못한 채 등장하지 못한다. 그저 내 마음엔 불안함과 공허함의 먼지만 쌓여갈 뿐.
집에 가는 길 차에서 마시는 콜드브루 한 잔이 불어오는 바람 덕에 들뜬 내 가슴을 물리적으로 더 뛰게 만든다. 괜스레 기분이 더 좋아진다. 이렇게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좋은 날 나는 갈 곳도 딱히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외로움인가? 나에게 외로움은 항상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그저 혼자 있는걸 못 견뎌하는 유치원 아이들이나 느끼는 원초적이고 쓸데없는 감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외로움을 인정한다. 나 또한 지금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나의 감정과 사색들을 공유하며 의지하고 싶다. 하지만 내면의 외로움을 달래보려 억지로 사람들을 만나보면 30분도 채 안되어 머릿속에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남자건 여자건, 선배건 후배건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도 나는 다시 홀로 외로움을 선택하려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난 이 외로움이 좋아!" 괜한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부질없는 희망을 바라느니 홀로 집에 가는 길에 마시는 콜드 브루 한 잔이 난 더 행복하다.
그리곤 하늘을 쳐다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내 가슴에 채운다. 겨울과 봄 사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불어오는 이 차가움과 시원함 사이의 바람은 해를 거듭할 때마다 매 순간 그 당시 나의 기분과 상황들을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그 어떤 향수와 음악보다도 기억과 추억을 되감기 시켜준다. "그때 나는 그랬지.."라는 앞으로의 기억들에 나의 추억들이 온전히 그리고 또 차분히 쌓였으면 좋겠다.
나는 항상 '사이'가 좋다.
'사이'란 무언가의 사이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 사이의 공간은 늘 외로움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틈새, 비어있는 그 사이는 내 마음에도 온전히 존재한다. 누군가는 비어있는 이 공간을 채우려 들겠지만 난 그냥 내버려두고 싶다. 그래야 마음의 여유가 있지 않을까? 마음에 무언가로 가득 차 있기만 한다면 우리는 조금의 여유를 돌볼 시간도 없을 것이다. 그 마음의 사이, 외로움은 나를 달래주는 감정이자 마음이 쉬어가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잠을 잘 때 벽과 침대 사이에 코를 파묻으면 느껴지는 찬 공기가 좋다. 또한 뚜렷한 계절보단 계절과 계절 사이의 환절기가 더 좋다.
극명하고 명백한 감정보다 이면을 어우르는 그 중간, 그 사이의 감정과 표현들이 난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이'도 늘 애틋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