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30대가 되면 자상한 남편에 토끼같은 아이 둘 쯤을 둔 안정적인 가정을 가진 여자가되어 있을줄 알았다. 못해도 멋진 자동차나 내 몸 하나 편히 누울 전셋집,
회사에서 인정받는 그럴듯한 직함, 혹은 여유로운 통장이라도 가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을 냉혹하고 냉정하고 때론 잔인했다.
나는 서른 다섯살에 결혼할 줄 알았던 남자와 눈물 콧물 쏟으며 헤어졌고,
그때까지도 서울의 월세를 전전했으며 면허도 없었을 뿐더러
방송국에 출근하는 일용직 노동자 신분의 작가로
겉으론 웃으면서 속으론 쌍욕을 하는 스킬 정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유로운 통장이라도 가졌을까?
아니. 그럴리가. 사회 초년생보다 못한 초라한 잔액이 담긴 통장을 그래도 빽이라고 위안삼고 있지.
내년엔 신혼여행으로 와야지!라고 다짐했던 여행들은 여전히 혼자 씩씩하게 다니고 있고.
그때는 꽤 거창했지만 나의 첫 여행은 아팠던 청춘의 낭만적인 충동이었다.
어느날 나는 나에게 파리행 비행기티켓을 선물했고 떠났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치열하진 않았어도 나름 열심히 살아온 내 스스로에게 술 한잔 사주는 의미였다.
그리고 낯선 길 위에서 깨닳았다.
누구나 선망할 멋진 30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 괜찮게 살아내고 있다는걸.
가보지 않은 길 끝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 없듯이
누군가에겐 초라하게 보일지 모를 내 인생도 꽤 마음에 드는 때가 있다는 걸.
사회가 정의내린 결혼적령기의 나이를 가진 나는 결혼하지 않았아도 괜찮은 '나'로써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걸.
남자친구와 함께 온 여행이 아니어도 남편과 함께한 여행이 아니어도 결코 외롭지 않다는걸.
길 위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으니까.
여행은 돈이 아니라 용기의 문제라는 것도 깨닿게 됐다.
그러니 지금 당장 비행기 티켓을 끊어도 그렇게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의 끝자락에서 나는,
어둠이 내린 파리의 세느강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며 ‘참 행복하다’라고 몇번이고 소리 내어 말했다.
그렇다. 나는 길 위에서 낯섦을 여행하며 내 인생에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빛나는 순간들을 목격했다.
진심으로 행복한 것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됐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행복이 어떤건지 알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보라고.
여행을 떠나보면 내 자신도 알지 못했던 꽤 괜찮은 나를 발견 할 수 있을거라고.
우리 모두는 그럴 권리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