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은 내게 물었다.
"짐이 그거밖에 없어요?"
30L짜리 배낭 하나.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간결한 여행의 무게였다.
그 안에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처음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행을 떠나야 했을 땐 '혹시나' '어쩌면'이라는 생각으로
온갖 잡동사니들을 가방에 꾸역꾸역 넣었다.
정말 그 가방만 있으면 가제트의 만능 팔처럼 무인도 한 가운데에 떨어져도 살 수 있을 것 같이 말이다.
버리고 싶어 떠나는 여행인데 나는 그 어떤 것 하나 쉽게 버리지 못했다.
사소한 물건 하나, 내게 날아온 차가운 마음 한 덩이조차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는
미련 많은 내 모습 같아 한숨이 나왔다.
닫히지 않는 여행가방 앞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과연 이 모든 것들이 내게 필요할까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세계 어디에나 생필품을 파는 곳은 있을 것이다. 약국도 병원도 화장품 가게도 있겠지.
옷은 깨끗이 세탁해 입으면 되고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떠나는 여행이 아니니
많은 옷도 예쁜 옷도 필요 없다.
혹시 자주 세탁을 못하더라도 여름이 아니니까 며칠쯤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
하나를 버리니 그다음부턴 쉬워졌다.
그렇게 제법 가벼워진 여행가방이 완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여행가방 속 절반의 물건은
여행하는 내내 꺼내 보지도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버리는 연습이 더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다음 여행에서부터는 조금이라도 고민이 되는 물건은 여행가방 앞에서 무조건 출입금지.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혹시나' '어쩌면'같은 일 역시 일어나지 않았으며
빼놓고 온 물건이 어떤 것이었는지 조차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시행착오를 몇 번 겪고 나니 이제는 여행가방을 꾸리는 것에 조금 더 수월해졌다.
며칟날에 걸쳐 꾸리던 여행가방은 이제 비행기 타기 하루 전날 후다닥 꾸릴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나는 내게 필요한것들이 어떤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어차피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필요하면 거기서 사지 뭐!'라고 생각하면 많은 것들을 짊어지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나는, 30L짜리 배낭 하나만큼의 물건만으로도 여행을 잘 마칠 수 있는 여행자가 됐다.
나를 짓누르던 고민의 무게도 마찬가지다. 버리고 내려놓고 연연해하지 않으면 편해진다.
마음을 비우고 한발짝 물러서서 보게 되면 별 일 이었던 것이 별 일 아닌게 되기도 하니까.
참 별 볼일 없는 건데, 그렇게 마음을 먹는게 참 별 일이긴 하다.
누군가 여행가방을 싸다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게 무엇이고 내가 포기해야하는게 무엇이며
절대 포기할 수 없는게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고 했다.
나는 이만큼 여행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내게 꼭 필요한게 무엇인지,
무엇을 포기해야하고 어떤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지 알게 됐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간다. 그렇게 나와 조금 더 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