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사이, 그 어디즈음에서
내가 처음 혼자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야겠다는 말을 내뱉은 건 스물여덟에 다니던 직장에서였다.
157cm의 작은 키의 나를 그때 세상은 잔인하도록 무겁게 짓눌렀다.
일도 연애도 일상도 뭐하나 쉬운 것도 내 편인 것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상처투성이로 넝마가 된 내 삶은, 생채기에 소금을 뿌린 듯 쓰라리고 아팠다.
살랑이는 봄바람에도 휘청거릴 만큼 위태로웠던 그때는,
살 용기도 그렇다고 죽을 용기도 없어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었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밤에 잠이 들면 아침에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날들이 이어졌다.
“제가 죽어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떠나려고요..”
황당하기 그지없는 사직 사유를 담은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왔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눈부시게 반짝이던 햇살이 서러워 나는 또 눈물을 흘렸다.
길은 되돌릴 수 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까.
나는 나를 위해 최대한 멀리, 최대한 낯선 곳으로 떠나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봄을 피우기 위해 땅 속에서 온갖 진통을 겪고 있을 스물여덟 3월의 둘째 날,
나는 나만의 봄을 피우기 위해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로지 혼자 떠나는 여행길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상에 홀로 던져버렸다.
케케묵은 현실이라는 먼지를 훅- 불어내고 내 상처를, 그리고 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나를 너무 방치했다.
통장의 돈을 박박 긁어 최소한의 경비를 만들고, 비행기 티켓과 똑딱이 카메라,
그리고 몇 가지의 옷들을 여행 가방에 꾹꾹 담았다.
소란스러운 내 마음도 담았다.
한 달 가까이 쓸쓸히 비워져 있을 서울의 내 작은 방에 산뜻한 인사를 건네고
나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 철도에 올랐다.
열차에 앉아 한참 동안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바라봤다.
지금, 한 달치의 짐을 들고 인천공항으로 향하고 있는 내가,
너무나 낯설고 생경스러워 도저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나, 정말 괜찮은 걸까..
비행기가 하늘을 박차 오르기 시작한다.
싫지 않은 두려움과,
기분 좋은 설렘이 공존하던 그 시간..
오늘과 내일 사이의 푸른 하늘 하얀 구름 위,
나는 파리의 품 속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