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혜 Nov 26. 2018

멋지게 인사를 건네는 법

봉주르의 마법

낯선 언어가 주는 묘한 안정감이 있다.

읽을 수도 알아들을 수 도 없는 언어가 주는 어떤 고립감.


알아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들려오는 말들이 음악이나 소리 그 자체로 들리는 순간,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 것 같은 그 느낌을 좋아한다.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한국에서 일할 때는 사람에 치이고 핸드폰에 치인다.

더구나 나의 일이란 게 회사원들처럼 정확히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24시간 일주일 한 달 내내 언제든 일을 하는 시스템이다. 퇴근 후 한밤 중이나 새벽에도 예외 없다.

윗 선배가 일을 시키고 싶은 시간에 나는 일을 해야 한다.

이제는 연차가 조금 쌓여 배짱도 좀 늘었다.

집에 돌아오면 그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핸드폰은 무조건 무음이다.


여행을 떠나오면 가장 좋은건 핸드폰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

굳이 연락을 해야 할 곳도 없고, 굳이 연락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편안함도 좋다.


주로 혼자 떠나오는 나에게 사람들은 어떻게 소통하고 대화하는지 물어본다.

주문은 손가락이나 혹은 '디스 원 플리즈' 한마디면 가능하고

나는 굳이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에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말을 할 기회가 많이 없다.

정말 하루에 한 말이라곤 한 두 마디가 전부일 때도 있는데

가끔 그런 침묵의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불편하지는 않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다르다. 나는 매일 수십 번도 더 말을 한다.

바로 이렇게.


"봉주르(bonjour)"


봉주르(bonjour)는 파리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마법의 주문이다!

파리 사람들은 불친절해. 차가워!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다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만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한 인사조차도 말이다.


파리에서 봉주르 한마디가 주는 파급력은 미묘하지만 대단하다.

영어로 인사를 한 사람과 봉주르라고 인사한 사람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


한 카페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은 관광객이 잘 안 오는 생마르탱 운하 쪽 어느 구석진 골목길에 있는 아주 작은 카페였다.

딱 봐도 관광객 같은 외국인인 내가 등장하자 프랑스 직원의 표정이 순간 굳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싫었다기보다는 당황한거라고 믿고싶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프랑스어로 얘기했다.


"봉주르~ 미안하지만 나 프랑스어 못하는데 영어로 주문해도 될까?"


굳어있던 직원의 표정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환하게 웃으며 물론이지!라고 경쾌하게 말했다.

덕분에 나는 아주 기분 좋게 주문을 마치고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또 한 번은 샹젤리제의 루이뷔통 매장에 들어갔을 때였다.

명품에 큰 관심이 없지만 굳이 거기에 들어갔던 이유는 너무 추워서.

잠시 파리의 칼바람으로부터 대피하고 싶었을 때 내 눈 앞에 루이뷔통 매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봉주르라고 인사를 하며 들어가자 한 직원이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친절히 설명을 해줬다.

이번에 새로 나온 컬렉션이 어떤 것들이 있고 이것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으며

위층에도 컬렉션이 있으니 한번 보시라는.


내가 이런 직원의 행동에 놀랐던 이유는 처음 파리에 갔을 때와 사뭇 다르게 나를 대해줬기 때문이다.

보통 그곳은 외국인들 특히 동양인들이 많이 가는 데다 구매가 아닌 그냥 한번 둘러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웬만하면 손님에게 이것저것 설명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 나는 함께 갔던 숙소 사람들과 정말 그 누구의 간섭이나 터치 없이 그야말로 구경만 잘하고 나왔었다.

그런데 봉주르 한마디로 나는 친절한 환대(?)를 받으며  매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때 내 지갑에는 고작 20유로가 전부였는데.


이토록 프랑스는 인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버스를 탈 때도 카페에 갈 때도 상점에 들어갈 때도 언제나 서로에게 인사를 한다.

동네를 걸어 다니다 보면 마주오는 사람이 봉주르~ 혹은 봉수아~(저녁 인사)라고 인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봉주르는 'bon'과 'jour'가 합쳐진 말인데,

'bon'은 좋다는 뜻이고  'jour'는 하루, 날 등을 뜻하는 말이다.

안녕의 의미로 쓰이지만 두 단어의 근본적인 뜻을 합쳐보면 '좋은 하루'라는 뜻이 되기도 하니까

'봉주르' 한마디로 누군가의 하루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익숙하지 않아도 한 번쯤은 내뱉어볼 만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 나라가 아니면 평소에 절대 쓰지 못할 말이니까!)


만나면 안녕하냐고 언제나 고맙다고 부딪히면 미안하다고 인사하는 파리가 그래서 참 좋다.

따뜻한 밥 한 숟갈 먹으면 뱃속이 뜨끈해지는 것처럼 한마디의 인사가 주는 그 따뜻한 다정함이 참 좋다.


멋지게 인사를 건네는 법은 간단하다.

미소를 짓고 한 손의 손바닥이 상대방에게 보이도록 들고, 그리고 소리 내어 말하면 된다.


"안녕?"


배려와 존중은 사소한 물음과 사소한 인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전 06화 나는 매일 라파예트 백화점에 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