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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Nov 24. 2018

나는 매일 라파예트 백화점에 갔다

파리에서 무료화장실을 이용하는 법 

파리는 정말 화장실에 야박한 도시이다. 

카페나 패스트푸드점 또는 일부 음식점에서도 돈을 내거나 구매 후 영수증에 적힌 비밀번호를 누르고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처음 사용한 유료 화장실은 파리의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을 했다는 레 두 마고(Les Deux Magots).

이곳에 유명하다는 쇼콜라쇼를 마시고 화장실로 내려갔는데 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던 직원은 

화장실 이용료를 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돈을 받는 만큼 화장실은 이불 깔고 잠을 자도 될 만큼 무척이나 깨끗했다.

화장실 위생상태에 예민한 나로서는 쾌적한 화장실에서 은밀한 일을 처리한 것은 꽤 좋았으나 

화장실에 관대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돈을 내야 하는 화장실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더러운 건 참아도 예쁘지 않은 건 못 참아!

'더러운 건 참아도 예쁘지 않은 건 못 참는다'는 파리의 사람들은 

그 옛날 화장실을 집 안에 두지 않고 이동식 변기에 배설을 한 뒤 밤에 되면 길가에 그대로 쏟아 버렸다고 한다.

하이힐이 만들어진 이유가 여성의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닌 그런 배설물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이미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베르사유 궁전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다. 

정원으로 나가야 화장실이 있는데 그마저도 꽁꽁 숨어있었던 것에 또 한 번 놀랐던 적이 있다.

이들이 이토록 화장실에 야박한 이유는 모든 배설 행위는 부도덕하다는 중세시대의 사상 때문이라고 한다.

(아니 왜? 먹고 자고 싸는 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매일 라파예트 백화점에 갔다

보통의 사람들이 백화점에 가는 이유는 쇼핑을 위해서겠지만 

처음 들어간 곳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구매해 버리는 쇼핑성향을 가진 나는 

쇼핑에 큰 흥미가 없으므로 순전히, 또 완벽히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갔다.

쾌적하고 안전하고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게다가 파리에서 무료 화장실이라니!


라파예트 백화점은 이토록 야박한 파리의 화장실 문화에서 살아남은 나만의 방법이다.

먼 지역에 있더라도 라파예트 백화점으로 와서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보통은 파리 외곽에 숙소를 잡으므로 시내까지 지하철만 30분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하루 일정을 라파예트 백화점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으로 시작할때도 많았다.

그냥 왜인지 모르게 나는 라파예트의 화장실이 제일 마음이 편안하다. 

(화장실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쓸 수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한 문제다!)


라파예트 백화점에는 5층과 6층에 무료 화장실이 있는데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장실은 5층에 있는 화장실이다. 

이곳의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샤크레쾨르 성당의 뷰가 정말이지 끝내주기 때문!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면 라파예트 백화점의 루프탑으로 올라가는것이 나의 루틴이다.

그곳은 에펠탑부터 샤크레쾨르 성당까지의 전망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탁 트인 시야가 마음을 시원하게 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펠탑 뷰를 볼 수 있는 곳 중에 한 곳이다.


라파예트 백화점의 루프탑은 시즌마다 콘셉트가 바뀌곤 하는데 

최근 2년 사이에는 나무 데크를 깐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곳에 아무렇게나 앉아 햇살을 맞으며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해도 좋고 

루프탑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앉아 에펠탑이 있는 파리의 풍경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그건 조금 사치스러운 일이지만 (카페 가격이 좀 비싸다) 꽤 낭만적이고 파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또 자주 이용하는 파리의 무료 화장실 중 하나는 스타벅스다.

몇몇 곳은 영수증에 적힌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하는 곳도 있는데 

오페라의 스타벅스나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있는 스타벅스는 비밀번호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안 가지만 외국에 나가서는 역시 스타벅스만 한 게 없다.


이런 일도 있었다.

몇 년 전 도미토리에서 묵었을 때 같은 방을 쓰던 동생들과 함께 에펠탑 조명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에펠탑 조명쇼를 보는데 맥주가 빠질 수 없지.

신나게 맥주를 마시고 지하철을 탔을때! 딱 그때부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강력한 그 신호에 우리 모두 발을 동동 구르다 도저히 참지 못했던 나는 

중간에 출구 밖으로 나와서 아무 카페나 뛰어들어가 볼일을 본 적도 있다.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화장실만 사용하면 안 되냐고 했지만 안된다길래 화장실 이용 후 

그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원샷 한적도 있다.


또 한 번은 퐁네프 위에서 에펠탑 조명쇼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미 혼자 센 강에 앉아 맥주를 홀짝인 터라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그리고 제일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는데 역시나 화장실 사용만은 안된다는 단호함에 

에스프레소를 테이크 아웃해서 나온 적도 있다.


내가 무작정 카페에 들어갔던 것은 유럽의 무료 화장실 사용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양해를 구하면 화장실만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가이드북의 설명 때문이었는데

역시 파리에서 화장실 사용은 녹록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급할 때는 유료 화장실도 종종 이용하고는 하지만 

(돈을 지불하고 깨끗한 화장실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몇 번의 긴박한 상황을 겪은 후에는 음식점이나 카페에 갔을 때 신호가 오지 않아도 

일단 화장실에 들리는 습관이 생겼다. 


파리 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가장 많이 걱정이 되는 건 치안도 소매치기도 아닌 화장실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파리에 가는 이유는 쾌적한 라파예트 백화점 화장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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