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처럼 남아 우리를 지탱하는 마음들
사랑이 끝났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관계가 멀어지고 시간이 흘러 잊혀진 듯 보일 때도 있죠.
사랑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은 흔적처럼 남아 말투, 표정 심지어 침묵 속에도 스며듭니다.
사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안의 풍경으로 자리를 옮길 뿐이죠.
그래서 사랑을 지나온 당신도 여전히 사랑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리학은 말합니다.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한다고.
사랑도 그렇습니다.
끝난 것 같아도 그 사랑이 남긴 마음은 다른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힘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용기로 바뀌기도 하지요.
어린 시절의 보호는 성인이 되어 배려가 되고 스승에 대한 존경은 배움의 열정으로 이어집니다.
연인에게서 배운 마음은 다른 관계 속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되살아납니다.
사랑은 형태를 달리하면서도 우리 안에서 계속 살아 있습니다.
첫사랑을 떠올려 보세요.
그때의 설렘과 떨림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들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작은 친절에도 감사할 줄 알게 하고 일상 속 풍경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합니다.
이별은 아픕니다.
약속은 공허로 바뀌고 모든 게 헛된 것처럼 느껴지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그 사랑이 남긴 흔적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그 사람과 나눈 대화, 함께 걷던 길, 닮아버린 말투, 새롭게 알게 된 음악과 책들.
떠난 사람은 없어도 그가 남긴 세계는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 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이어져 있습니다.
받았던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흘러갑니다.
어머니의 돌봄은 내 아이를 돌보는 손길이 되고 좋은 친구를 만난 경험은 또 다른 관계 속에서 따뜻함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며 확장되고 우리 안에서 계속 증폭됩니다.
지질학의 퇴적층처럼 우리 마음에도 사랑의 층이 쌓여 있습니다.
유년기의 사랑, 청춘의 사랑, 우정과 연대, 열정과 희생이 켜켜이 남아 지금의 우리를 빚어냅니다.
가끔은 깊은 층에서 올라온 기억이 스스로를 새삼 깨닫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과거형으로 말합니다.
"사랑했다, 사랑받았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현재형입니다.
그때 받았던 마음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지탱하고 있으니까요.
힘들 때 떠오르는 따뜻한 말, 외로울 때 생각나는 다정한 기억, 용기가 필요할 때 들려오는 마음속 목소리.
그 사랑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더 맑아지고 세월이 지나도 더 깊어지며 다른 이름으로 우리 안에 머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어진 모든 사랑 속에서 결국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의 미소와 위로 속에는 과거에 받았던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마음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흘러갈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은 언제나 다른 이름으로,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안에 조용히 살아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