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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힘찬 Jun 17. 2017

편해질 필요는, 없었다.

감성작가 이힘찬

야외 촬영 일이 있어, 이틀간
차를 빌려 제주시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녔는데,
차가 있으니 더 여유롭겠다는 생각에,
더 멀리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출발 전부터 꽤나 들떠있었다.

오랜만에 해안가를 타고 달렸다.
푸른 빛 풍경에 빠져서,
푸른 빛 바람에 취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차가 없어서 가지 못했던 곳.
조금 더 멀리 있는 바다,
조금 더 멀리 있는 카페,
꽤 멀리 있는 계곡까지.

거리와 상관없이,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좋았고, 편했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너무도, 많이 흘러 있었다.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던 것들,
글로 담고 싶었던 생각들,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이미,
하루 이틀이 지나있었다.

차가 있어 더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차가 있다는 이유로 나는,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과는 별개로
쓸데없이, 무리하고 있었다.

-

편리함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하루를,
소중한 이야기가 담길 과정들을,
지워 버릴 수도 있다.

짧은 시간에 갈 수 있는 곳을,
오랜 시간에 걸쳐 갔다고 해서,
결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정리하고,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우리의 감정도,
그러하듯이.

-

이곳에 있는 동안,
많은 곳에 도달하려는
욕심은 모두 내려놓고,
내가 닿을 수 있는 곳 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꿈과 목표는 항상 필요하다.

하지만 내 손 밖의 것을 향해
힘껏 손을 휘두르느라,
이미 내 품에 닿아 있는 것에
소홀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바쁘게 움직인 이틀의 시간이
다시 한 번 내게 가르쳐주었다.


-

어쩌면 나는,
글에도 그림에도 사진에도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이 공간에,
이야기를 채워 나가고 싶다고,
더 많이 나누고 싶다고,
더 많이 소통하고 싶다고,
그렇게 무리하고 있었다.


바보 같아. 내일은

그냥 무작정 쉬어야겠어요.

그리고 미안해요.
내 표현에도, 잠시,
소홀했던 것 같아요.

내 감정에도, 내 마음에도,
바로 지금만 생각하고 달리기보다는,
앞으로의 나를, 앞으로의 우리를,
바라보며 나아가야겠어요.


한 걸음씩.

2017.06.16 - 에세이 작가 이힘찬

#제주체류 11, 1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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