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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힘찬 Jun 21. 2017

가슴이 욱신거린 날

감성작가 이힘찬

며칠 만에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곳에서 만난 두 남자와 함께
제주 아래쪽에서 서쪽으로,
천천히 돌고 오기로 계획했는데,
전날 밤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어딘가에 가야지-라고
아무도 계획하지 않았다.
그저 어디론가 갔다가,
길을 따라 돌아오자고. 그래서
비가 쏟아지는 것도 괜찮았다.

비가 내리는 계곡에 앉아 쉬었다.
빗 소리도, 흐르는 물소리도,
우리처럼 비를 피해 절벽 아래로
숨어든 새의 목소리도,
자연 그대로라서 더 맑고 시원했다.

-

비가 조금 약해지나 싶어,
오름에 오르려고 급히 달려갔다.
그런데  문이 닫혀있어 
아쉬운 마음으로 발을 돌려야 했다.

해변으로 내려가려는데,
시선을 끄는 카페가 하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기보다는
내가 무작정 들어가 보자고 했다.

간판에 쓰여있는 Lovely 라는
단어 하나만 보고, 마음을 뺏겼다.
나는 '사랑'이라는 말 앞에서는
언제나 멈춰 서는 사람이니까.

오드리 헵번의 사진이 가득한 카페였다.
그래서 카페 오드리구나, 라고
혼잣말처럼 속삭였는데,
카페 사장님이 답해주셨다.

오늘 드리는 이야기,
그래서 오드리에요.

오늘 드리는 이야기, 오드리.
나는 너무 좋다며 밝게 웃었다.
오늘, 드리는, 이야기라니.
내가 늘 보내고 있는 하루여서
내가 늘 표현하고 있는 하루여서
더 반가웠던 것 같다.

-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또, 나에게 특별한 공간,
무인 카페로 두 사람을 데려갔다.

그 조용한 카페에 앉아 세 남자는,
각자가 생각하는, 각자가 지나온, 혹은
앞으로 맞이할 사랑을 이야기했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사실 며칠 전에 운동을 하다가
명치 옆에 있는 뼈에 살짝 금이 갔는데,
그때부터 이따금씩 가슴이 욱신거렸다.

사랑을 이야기하다가,
당신을 이야기하다가,
가슴이 욱신거리니까,

마치 마음이 욱신거리는 것 같아서,
아니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아서,
그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2017.06.20 - 에세이 작가 이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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