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작가 이힘찬
제주의 날씨는 선택이다.
내가 날씨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가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하늘의 색깔, 바람의 냄새 아니면 예전에 다쳤던 곳이 갑자기 욱신거린다거나,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일기예보 정도. 서울에 있을 때는, 비가 온다고 하면 우산을 챙겼다.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릴 느낌이다 싶으면 우산을 챙겼다. 비가 아주 조금씩 내리고, 이제 곧 그치겠구나, 퇴근할 때쯤에는 전혀 오지 않겠구나 싶으면 그냥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은 들어맞았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날씨는 기준이 전혀 다르다. 파랗고 맑기만 하던 하늘을 믿고 예쁘게 단장을 하고, 그동안 신지 못했던 새 신발을 신고 밖에 나섰는데 10분도 지나지 않아 비가 쏟아진다. 곧 엄청나게 쏟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어두컴컴한 하늘과 하나둘씩 투둑 툭툭 내리기 시작하는 빗방울을 보며 커다란 우산을 챙겨 나왔는데, 차에 타기도 전에 비가 뚝 그쳐버린다. 차로 이동을 할 때도 그렇다. 출발할 때는 파란 하늘을 보다가, 중산간 지역을 달릴 즘에는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무섭게 쏟아지는 비에 씻기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도착할 때쯤에는 파란 하늘을 지키려는 하얀 구름과 그 하늘을 먹으려는 검은 구름이 서로 맞붙어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아침부터 찬바람에 둘러싸여서, 얇은 후드티에 재킷까지 걸치고서야 몸이 좀 안정을 취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나갔는데, 오후 내내 등 뒤에는 무거운 가방이, 오른손에는 더 무거운듯한 두 재킷이 걸려 있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런 날이 많았다. 일기예보에서 오늘 날씨가 어떻다고 하든, 지금 하늘이 어떤 느낌을 주든, 그건 그날의 날씨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답을, 아니 힌트조차 주지 않는다. 우산을 챙길지, 그냥 두고 나갈지는, 결국 내 선택일 뿐이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하늘을 탓할 수도 기상청을 탓할 수도 없다. 그냥, 그게 제주의 날씨인 것이다.
우리 삶이 그렇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언제 비가 쏟아지고, 눈이 쏟아질지. 태풍이 어디서 어떻게 불어올지, 맑은 하늘과 뜨거운 태양빛이 언제 모습을 드러내고 나를 따뜻하게 해줄지, 알 수 없다. 누군가 힌트를 줄 수도 없고, 정해진 답이 있지도 않다. 내 가방까지 덮어줄 커다란 우산을 챙겨 나갈지, 카메라 하나를 어깨에 메고 가볍게 나갈지는 내 선택이라는 것이다. 왜 오늘 비가 온다고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냐고, 나는 어쩌다 이렇게 비를 홀딱 맞았냐고, 인생길 어딘가에 서서 그렇게 불평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건 내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냥, 그게 내 삶인 것이다.
오늘은 어떨까?
내일은 또 어떨까. 어쩌면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질 수도 있다. 아니면 햇빛이 쨍하게 떠서, 그동안 젖어서 축 처져만 있던 내 몸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도 있다. 찝찝하고 무거운 바람이 불어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고, 상쾌하고 가벼운 바람이 불어와 어린애마냥 좋다고 뛰어다니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일 우산을 챙길 것인가, 외투를 걸칠 것인가, 그냥 에라 모르겠다 카메라 하나 달랑 어깨에 걸치고 달려 나갈 것인가.
그건 단지 우리 삶의 몫이다. 우리의 선택이다. 탓할 것이란 그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탓하지 말고, 내가 선택한 것에 집중하고 그 선택이 가져다 준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원하는 답-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멈춰 설 때까지, 우리는 계속 그렇게 나아가면 된다.
변덕이 심한 제주의 하늘을 몇 달 째 바라보다가 든 생각. 아니, 변덕이 심한 나의 지난 시간들을 몇 달 째 돌아보다가 든 생각. 에라 모르겠다, 내일은 그냥 카메라만 들고나가야겠다. 늘 그렇게 외치고 잠이 들지만, 나는 지금도 결국 우산과 외투와 잡다한 용품들과 카메라를 전부 챙기고 나서야 안심이 돼서 밖으로 나간다.
내일은, 어떤 하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