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제주x제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힘찬 Apr 12. 2018

제주 체류에서, 제주살이로

감성작가 이힘찬

3월 12일에 집을 계약했으니, 제주로 이사 온 지 이제 딱 한 달이 되었다. 어찌 보면 급하게 넘어온 것 같지만, 작년에 7개월 동안 제주에 머물면서 받은 영향이 그만큼 컸던 게 아닐까.

협재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

서울로 돌아가서 작업실을 구하고 단 두 달을 머물렀는데,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내 시야를 가리는 건물들도, 출퇴근 길에 마주하는 꽉 막힌 풍경도, 흐릿한 공기 위의 흐릿한 하늘도. 분명 오랜 시간 마주하던 풍경임에도, 제주에서의 시간과 비교가 되었는지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작업실을 정리하고, 이틀간 제주에 와서 집을 알아본 후, 한 주 뒤에 짐을 갖고 넘어왔다.

산책길에 마주한,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
사라봉 산책로 외곽에 있는 '산지천등대'

오자마자 짐을 정리하고, 바로 작업이 가능하도록 책상을 세팅하고, 살림을 준비하고, 중간에 강의가 있어 서울에 다녀오고, 제주 4.3에 대해 공부하고, 그림과 사진으로 제주 엽서&책갈피를 만들고, 서울보다 한참 빨랐던 벚꽃 축제를 지나 오늘까지. 그렇게 정신없이 한 달이 흘러갔다.

서사라 벚꽃축제 길가에 떨어진 '왕벚나무 꽃'
오라동 종합경기장  옆 산책로의 '왕벚나무 꽃'
제주 왕벚나무 꽃 사진으로 만든 '벚꽃 책갈피&엽서'
제주 왕벚나무 꽃 사진으로 만든 '벚꽃 책갈피&엽서'

분명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고 숲이 있어, 틈틈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며칠은 차를 빌려 서쪽과 동쪽으로 나누어 여행하고, 어느 날은 집에서 용두암까지 걸어서 내려가며 동네를 여행하고, 때로는 옥상에서 한라산을 바라보거나 버스를 타고 바다와 가까운 카페에 가서 글을 쓰기도 했다. 아마도 일상 속에서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이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이고, 이곳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혜택이 아닐까 싶다.

용두암 가는 길에 마주한, '용연 구름다리'
용연 구름다리 옆 벚나무

며칠 전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데, 사장님께서 이곳에 와서 일을 시작하신지 2년이 되었다는 말에, 2년을 지내보니 어떠신지를 여쭈었다.



"생활하기 참 좋아요. 공기도 좋고. 나야 뭐 쉬엄쉬엄 일하면서 사니까 좋지. 아까 여기 5년째 지내는 분이 왔다 가셨는데, 생활을 제대로 해야 하니까 여기서도 열심히 일을 해야 해서 힘든 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름다운 풍경이 곁에 있으니까. 그게 너무 좋으니까"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유채꽃 길'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유채꽃 길'

그게 딱 맞는 말이었다. 여행으로 온 게 아닌 이상, 어디에 있든 마찬가지로 우리는 생활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서울에서 지낼 때와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가장 큰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풍경이다. 길을 걸으면서, 가려지지 않은 한라산을 볼 수 있다는 것. 조금만 걸어도 바람을 타고 온 바다의 향이 느껴지고, 바다를 따라서 수평선과 하늘을 보며 마음껏 걸을 수 있다는 것. 삶 속에, 자연이 주는 선물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 혜택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어제부터 우쿨렐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제주에서 알게 된 소중한 인연. '뚜럼 브라더스' 덕분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하나하나씩 제주에서 무엇인가 채워가고 싶었는데, 첫 번째는 엽서와 책갈피를 만든 것이었고, 우쿨렐레를 배우는 것이 그 두 번째가 될 것 같다. 오늘은 옥상에서 한라산을 보며 짧게 연습을 했는데,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마주하는 풍경이며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며칠 동안 고민하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

이제부터는, 작년 제주에서 체류할 때와는 모든 것이 다르다.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야만 하기에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어떤 시간으로 채워갈지 알 수 없지만, 이전보다는 더 밝은 모습으로 하루를 채우리라. 그 시간들을 글 속에 그림 속에 사진 속에 담으며, 많은 사람들과 더 즐겁고 더 따뜻한 소통을 이어가고 싶으니까.

2018년 4월 12일, 제주살이 한 달째

by 에세이 작가 이힘찬


매거진의 이전글 아픔의 시간, 제주 4·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