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 신발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좋은 신발에 대한 아주 주관적인 이야기
“좋은 신발이 당신을 좋은 곳으로 이끌어 줄거에요.”
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으실겁니다.
한국 유명 디자이너가 처음 한 얘기라는 말도 있고,
누구나 알 법한 티비 드라마에서 대사로 처음 등장했다는 말도 있는 이 문구는
한국인이라면 신발을 고를 때 불현듯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표현의 방식은 다르지만 지역과 세대를 불문하고 신발에서 비롯된 유명한 말이 종종 있습니다.
마릴린 먼로는 “한 켤레의 완벽한 구두는 여성이 세상을 지배하게 한다”는 말을 했고,
“신발은 자신의 육체뿐만아닌 영혼을 받쳐주는 표현이자 태도”라고 말한 루브탱의 말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발은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매개체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신발은 무엇일까요?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의 신발이라고 무조건 좋은 신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좋은 신발은 크게 두 가지의 조건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나의 아이덴티티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이고
둘째, 그러면서도 “잘” 신을 수 있는 신발 이어야겠죠.
첫째 조건이 경우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다른 인간상을 하나로 표본화 할 수 없듯이
결코 정답이 없는 질문이겠지요.
그저 많은 신발을 신어가며 직접 느껴보는 방법들을 통해
내가 직접 찾아갈 수밖에 없는, 아주 개인적인 부분인 것입니다.
자신의 취향, 처해있는 상황, 지금 있는 장소 와 경우 등 많은 변수들이
복잡하게 엮이어 그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편한 신발의 조건인 “잘 신는것” 어떨까요?
이 또한 주관적인 측면이 강한 요소이나,
어느정도 그 범위를 좁힐 수 있는 팁들은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잘 신을 수 있는 신발의 조건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신고 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한 “착화감” 입니다.
내가 신고 생활할 떄 얼만큼 편하게 느껴지는가를 말하는 부분으로
내 발에 맞는 크기과 넓이를 가지고 있되, 발을 감싸는 압박이 너무 강해서도 약해서도 좋지 않습니다.
정말 나에게 딱 맞는 좋은 맞춤 구두를 처음 신으면 느껴지는 전율이 있습니다.
비싼 명품 구두뿐만 아닌 우리가 편한 운동화를 살 때에도,
미세한 5mm 차이에 짜릿한 전율과 식은땀나는 소름 사이를 오가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입니다.
모든 신체부위를 통틀어 가장 미세한 차이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부위가 발인만큼
나에게 딱 맞는 신발은 결코 두 개가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옷은 종종 물려입지만 신발은 그러기 어려운 이유 아닐까요?
두 번째 잘 신기 위한 조건은 바로 지속성입니다.
아무리 착화감이 좋은 신발이라도 그 편안함이 금방 무너져버린다면 의미가 없겠지요.
즉 신발 자체의 내구성과 내 발을 잘 받쳐주는 지지력이 모두 오랫동안 뒷받침 되어야만
좋은 신발을 오랫동안 잘 신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속성은 신발의 소재와 제조 공정뿐만 아니라 디자인 자체에서도 비롯됩니다.
디자인은 신발의 구조를 결정하고, 이런 구조가 소재와 공법에 큰 영향을 주기에
어찌보면 높은 지속성을 가져가기 위해 가장 처음 고민될 부분은
오히려 디자인이 되는 것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잘 신기 위한 조건은 유연성입니다.
우리 발은 수많은 관절들로 이뤄져 움직임에 따라 그 모양과 형태가 계속 변하기에
신발이 너무 견고하고 우직하다면 활동성에 큰 저해가 되겠지요.
어찌 보면 유연성은 지속성과 대립이 될 수도 있는, 양립하기 까다로운 부분이기도 하겠습니다.
하지만 꼭 그럴까요?
사실은 오히려 유연성이 지속성을 더욱 높여줄 수 있습니다.
좋은 예시로 고층 건축물이나 긴 교량의 구조를 살펴본다면
어떤 충격에도 끄떡없는 단단함을 가져가는 것이 아닌
바람과 다양한 충격에 잘 흐름타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삶에 있어 다양한 외부 충격은 불가피하기에
이를 오히려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지요.
신발도 이와 같습니다.
무조건 튼튼하고 빈틈없는 구조로 만드는 것이 아닌
발의 움직임에 따라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을 보강하여 충격을 분산시키고
또는 획기적인 구조로 해당 부분을 제거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내외부의 자극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자면, 잘 신을 수 있는 신발이라 하면
신었을 때 편안하되, 그 내구성과 유연성이 뒤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재밌는 반전은, 이러한 “잘” 신을 수 있는 신발의 고려사항들이
디자인 아이덴티티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착화감은 신발의 아웃라인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고,
지속성은 신발의 소재에서 비롯되며
유연성은 신발의 구조로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웃라인과 소재, 그리고 신발의 구조. 이는 신발 디자인을 구성하는 3대 요소 이기도 하죠.
앞서 정답이 없다고 말했던 나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디자인” 이라는 질문은
역으로 어느 정도 서술될 수 있는 “잘 신는” 신발의 가이드에서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좋은 신발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내가 잘 신을 수 있는 신발,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의 신발입니다.
양립하기 어려워 보였던 대답은 사실 같은 대답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요?